통일방침을 제시한 제2차대회/1948.3.27~30
1948년은 조선민족에게 있어서 독립을 이루려는 민족자주세력과 분단의 고정화를 획책하는 미국과 그 추종세력과의 사이에서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진 시기였다.
미국은 남조선에 대한 군사적점령을 영구화하려는 민족분열정책을 더욱 노골화하였다. 조선내 각계층의 모든 민주세력이 참여하는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조선인이 스스로 통치해나가기로 했던 《모스크바3상회의》(소련, 미국, 영국의 외상회의)의 결정을 짓밟고 결정집행을 위해 꾸려진 쏘미공동위원회사업을 파탄시켰다. 그리고 조선문제를 유엔에 상정하여 남조선에서 단독선거를 실시하여 괴뢰정부를 조작하려고 하였다. 유엔은 1948년 3월까지 남조선에서 단독선거를 실시할것을 결정하였다.
북조선로동당 제2차대회는 이와 같은 첨예한 정세속에서 1948년 3월 27일부터 30일까지 진행되었다. 주된 의제는 날로 격화되는 민족분열의 위기를 막고 조국의 자주적통일을 실현하는 문제였다.
김일성주석은 대회에서 하신 《북조선로동당 제2차대회에서 한 중앙위원회사업총화보고》와 《모든 힘을 민주기지의 강화와 조국의 통일독립을 위하여》라는 역사적인 결론에서 창립이후 당의 활동을 전면적으로 분석총화하시고 조국의 자주적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방침을 밝혔다.
김주석은 최고입법기관을 전조선적으로 선거하여 민주주의적헌법을 채택하고 진정한 민주주의인민정부를 구성할 방침을 제시하였다. 나라를 자주적으로 통일하기 위하여 당면하게는 미제침략자들이 감행하려고 하는 남조선단독선거를 저지파탄시켜야 하며 이 거족적인 투쟁에 전체 인민을 조직동원하기 위하여 남북조선 정당, 사회단체대표자연석회의소집을 적극 추진할데 대하여 강조하였다.
대회결정에 따라 같은해 4월 북과 남의 56개 정당, 사회단체대표들 700여명의 참가밑에 남북연석회의가 평양에서 열렸다.
8월 25일에는 남북총선거가 실시되었다. 북반부에서는 유권자총수의 99.97%가 선거에 참가하여 212명의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 선거되었다.
한편 공개적인 방법으로 선거를 실시할수가 없었던 남반부에서는 지하비밀선거가 진행되어 1,080명의 인민대표가 선출되었다. 그중 1,002명이 38도선을 넘어 황해남도 해주에 모였다. 이곳에서 남조선인민대표자대회가 열려 360명의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 선거되었다.
북과 남의 대의원의 참가밑에 9월 2일부터 모란봉극장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차회의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이 채택되고 김일성주석은 내각수상으로 추대되었다.
평양 모란봉극장에서 진행된 최고인민회의 제1차회의
9월 9일 주석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를 조직하시고 공화국의 창건을 공식 선포하였다.
당 제2차대회에서는 통일정부수립문제 이외에도 인민경제계획수행에 관한 문제, 당을 강화하는데서 제기되는 문제 등이 취급되었다.
당 제2차대회 이후 조국해방전쟁(1950~53년)을 겪은 조선은 3년간의 전후인민경제복구사업을 기본적으로 수행하고 1956년 4월 당 제3차대회에서 사회주의기초건설의 설계도를 제시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