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은 일본, 미국, 토착왜구의 합작품

평화이음이 월간 ‘민족과 통일’ 12월호를 발간했습니다.
우리사회와 코리아반도 정세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소개합니다.

국가보안법은 일본, 미국, 토착왜구의 합작품

1948년 12월 1일 국가보안법의 탄생
국가보안법은 1948년 12월 1일 제정되었다.

국가보안법은 해방 이후 이념 갈등이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만들어진 법이다.

해방 후 남북이 분단되면서 이승만과 한민당을 중심으로 한 세력은 좌익세력의 반대와 저항, 그리고 중도파의 불참 속에서 1948년 남한만의 5.10 총선을 실시했다. 그해 10월 여순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은 같은 해 4월 일어난 제주 4.3사건의 진압을 위해 출동 명령을 받은 여수 14연대가 이에 항거하고 이러한 항명 사태가 각 부대로 번져 무력으로 진압된 사건이다. 이 사건이 국가보안법을 제정하게 된 직접적인 배경이다.

이승만 정부는 국가보안법 제정 이유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단체 활동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애초 국가보안법의 이름은 ‘내란행위 특별조치법’이었으나 논의를 거치는 과정에서 내란 유사의 목적을 가진 결사·집단의 구성과 가입을 처벌하는 것으로 본질이 바뀌면서 이름도 보다 포괄적인 국가보안법으로 바뀌게 된다.

국가보안법 제정 당시부터 악용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컸다. 정치적으로 반대파를 제거하는데 동원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반민주 악법이란 논란이 있었다. 친일 세력 중심의 이승만 정권을 공고화하고 정치적 반대 세력을 탄압하며 국민의 사상을 통제하기 위한 장치로 마련된 악법이라는 것이었다.

국가보안법이 제정되었을 당시부터 나왔던 우려는 대한민국 역사에 그대로 재현되었다.

국가보안법은 실질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어도 ‘북한을 이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도’라는 표현 아래 사상·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으며, 정부를 반대하는 세력과 사람을 탄압하는 악용되는 법으로 자리 잡았다.

일본의 치안유지법 그리고 미국의 매카시즘

국가보안법의 모체는 일본의 치안유지법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의 치안유지법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김민웅 경희대학교 교수는 영화 「게임의 전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메이지유신 이후에 일본이 지향했던 제국주의의 노선에 대해서 사회주의는 반대했고 치안유지법은 바로 이런 내부의 저항과 함께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를 억압하는 데 쓰였다.”

일본의 치안유지법 자체가 일본 안에서 사상을 탄압하고 정권을 보호하기 위한 만들어진 것이다. 이 치안유지법이 일제강점기에 고스란히 독립운동가를 탄압하던 법으로 활용되었고, 해방 후에 국가보안법이란 이름을 단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국가보안법 탄생 배경에는 또 하나 짚어 볼 것이 있다.
바로 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의 냉전 정책이다.
미국에 이른바 매카시즘이란 것이 있다.
매카시즘이란 적법한 증거 없이, 오로지 공산주의자라는 의심만으로 정치적 반대파를 제거하는 정치 행태를 말한다. 이 말은 1950~54년 빨갱이 사냥에 앞장섰던 공화당 상원의원 조셉 매카시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서 매카시즘의 시대는 이보다 훨씬 먼저 시작돼 훨씬 더 오래 지속했다. 대략 1947년에서 1950년대 말까지다.

1947년 3월 트루먼 행정부가 모든 연방공무원에 대한 충성도 심사를 시행하고, 10월 미 하원이 영화계에 대한 공산주의자 색출에 나선 것이 그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연방공무원에서 시작된 이른바 ‘빨갱이 사냥’은 이후 영화, 방송, 언론, 대학, 노동 등 사회 각 분야로 확산돼 수백 명이 투옥되고 수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트루먼 정부는 소련과의 냉전을 본격화하기 위해서 이른바 ‘빨갱이 색출’에 나선 것이다.

한반도는 해방이 된 후 남북으로 갈라져 남측에 미군정이 3년간 실시되었다.

김민웅 교수는 “1945~48년 우리는 해방 공간이라고 얘기를 하는데 그 해방 공간의 의미는 무엇이냐? 그것은 우리가 자주 국가가 될 것인가 아니면 미국의 지배하에 들어갈 것인가? 이것을 결정하는 굉장히 중요한 시기였죠. 당시 미군정이 지배했는데 미군정의 해방 공간 3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목표는 미국이 원하는 정치, 경제 질서를 만드는 것이고, 그것을 담당할 수 있는 세력을 권력의 자리에 올리는 거죠”라고 해방 정국에 대해 평가했다.

미군정이 실시되는 동안 친일파와 미국의 입장에 충실한 사람들이 주요한 직책을 차지하게 되었다. 미군정의 비호 아래 성장한 세력은 결국 남한 단독 선거로 정권을 차지했다.

그리고 단독선거를 반대하며 투쟁했던 사람들을 탄압하기 위해 국가보안법을 만든 것이다.

즉 국가보안법의 탄생 배경에는 미국의 냉전 정책이 있다고 봐야 한다.

국가보안법은 미국과 일본, 그리고 미군정으로 다시 살아난 친일파 세력이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지키기 위해 만든 법이라고 할 수 있다.

-충처: 자주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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