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관계를 진보적 관점에서 어떻게 볼 것인가

손정목 류경완의 국제관계 길라잡이(1)

서방 언론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남한 언론의 현실에서 진보의 관점으로 국제관계를 읽어내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있다. 이에 4.27타임즈에서 국제관계에 대한 진보적 관점 정립을 위해 4.27시대연구원 출판 도서 ‘진보 길라잡이’에 실린 내용을 연재한다. 이를 민플러스에서도 소개한다. 필자 : 손정목 4.27시대연구원 부원장, 류경완 코리아국제평화포럼(KIPF) 공동대표

1. 미국식 이상주의·현실주의 관점 부정

진보적 관점에서 국제관계를 바라본다는 것은 한국사회에 지배적인 미국식 이상주의와 현실주의 국제관계 관점과 이론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미국식 이상주의란 미국식 자유주의가 인류의 보편적 가치이기에 이 가치를 전 세계가 받아들이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고, 현실주의란 국제사회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장이기에 국익 실현을 위해서는 현실적 타산과 군사력을 비롯한 온갖 술수와 힘을 사용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주장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미국을 대표하는 자유주의와 실용주의 사상이 녹아 있습니다. 이런 미국식 이상주의와 현실주의 관점으로 국제관계를 바라보면 미국이 자국 이해 실현을 위해 벌이는 온갖 불법적이고 무도한 지배와 간섭, 제재와 전쟁행위가 다 정당화되는 함정에 빠지게 되고, 나아가 미국은 패권국이기에 그렇게 해도 된다는 ‘미국 예외주의(Exceptionalism)’를 인정하게 됩니다.

사실 이 두 관점은 내용적으로 하나입니다. 즉 양육강식의 국제사회에서는 미국식 자유주의와 국익 실현을 위해 타국을 제재압박하고 침략하여 전쟁을 일으켜도 무방하다는 것입니다. 이상주의를 앞세우는 미국 민주당이 평화를 지향한다고 하지만, 미국 전쟁사는 민주당 정권이 전쟁을 더 많이 벌였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차, 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등 주요 큰 전쟁에서 미국은 모두 민주당 정권이었습니다. 오히려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을 끝낸 것은 현실적 타산을 내세운 공화당 정권이었지요. 물론 공화당 정권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침공에서 보듯 필요하면 언제든지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결국 이 두 관점은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정당화하는 철학적, 이론적 바탕입니다. 현실주의가 주로 정치군사적으로 표현된다면, 이상주의(자유주의)는 정치경제적으로 표현됩니다. 미국이 핵무력을 강화하고, 세계 여러 곳에 군대를 주둔시켜 해당국과 그 주변에 정치, 군사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현실주의라면, 달러 체제의 유지 강화를 바탕으로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과 침투를 보장한 이익 실현이 자유주의 실현으로서 이상주의입니다. 이를 미국 중심 국제금융질서라고 합니다.

이 두  관점은 미국이 세계 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져 단독 패권국이 되자 더 극단화되어 신자유주의(Neoliberalism)와 신현실주의(보수주의. 네오콘, Neoconservatism)로 발전하였습니다. 이 관점은 1980년대부터 제기되어, 유일 초강대국으로서 영향력이 더 강화되어 이른바 ‘세계화’ 바람을 전 세계로 확대시키면서 본격화되었습니다. 신자유주의, 신현실주의란 사회주의가 현실적 위협이 되지 않는 조건에서, 국내적으로는 ‘작은 정부론’을 내세워 복지를 축소하고 공공부문 민영화를 통해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한편, 국제적으로는 국경과 민족의 경계를 허물어 자본의 자유로운 침투를 보장하는 시장만능의 세계체제를 원하는 미국 군산복합체와 금융자본의 이해를 대변한 관점입니다. 이것이 신자유주의 세계화 관점입니다.

그리고 미국은 이를 거부하는 국가들에 대해서는 ‘끝없는 전쟁'(Endless War)전략에 따라 전쟁을 일으키고, 쿠데타 공작을 일삼았습니다. 이른바 ‘색깔혁명’과 ‘테러와의 전쟁’이 일어난 배경입니다. 이것이 네오콘이라 불리는 신보수주의관점입니다.

나아가 이 관점은 사상이론적으로 정립되어 전 세계 학계와 언론은 물론 영화, 온라인 등 모든 미디어로 확산되어 끊임없이 교육, 선전되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인간은 유전자 자체가 이기적이라는 이른바 ‘이기적 유전자’론을 퍼트려 이기주의가 사람과 사회의 본성인 것처럼 왜곡하고, 민족과 국가의 경계를 허물고 개인주의를 극대화하기 위해 민족주의를 전체주의로 왜곡하고, 해체주의를 유행시켰습니다.

이기주의가 사람의 생물학적 본성이라는 것은 이기주의를 제도화한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체제야말로 사람의 본성에 딱 맞는 제도로서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특히 신자유주의 실현에 걸림돌이 되는 집단인 국가와 민족을 배격하고 오직 개인만이 최고의 가치로 세워져야 국가와 민족의 경계가 무너지고 (금융)자본의 자유로운 이익추구가 용이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의 완성을 위해 신자유주의자들이 내세운 것이 이른바 ‘세계정부’론입니다.

이렇듯 이상주의와 현실주의라는 미국식 국제관계 기본관점은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유지 강화하는 철학이자 기본전략입니다. 이 입장이 전 세계에 만연하면서 국내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국내 문제에 대해서는 민주와 인권을 주장하면서도 국제문제에 대해서는 미국의 주장에 동조하는 경향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미국식 관점을 수용한 것입니다.

▲ 2019년 11월 2일 이란은 1979년 대사관 인수 40주년을 앞두고 테헤란에있는 전 미국 대사관 외벽에 그려진 새로운 벽화를 공개했다.[사진 : 인터넷 갈무리]
▲ 2019년 11월 2일 이란은 1979년 대사관 인수 40주년을 앞두고 테헤란에있는 전 미국 대사관 외벽에 그려진 새로운 벽화를 공개했다.[사진 : 인터넷 갈무리]

 

2. 국내의 제한적·개량적 국제관계 인식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를 지향한다는 국내의 진보언론이 중동의 시리아 전쟁이나 미국-이란의 전쟁위험 등과 관련해 미국의 시각에서 시리아 정부를 비난하고, 이란 문제를 거론하는 것을 쉽게 보게 됩니다. 또 미국 정치와 관련해서는 과거 신흥국들을 침공하고, 세계 경제위기를 조장한 금융자본을 대변하는 민주당 주류세력을 진보주의자들인 양 옹호하는 것도 봅니다. 심지어 압도적 국민 지지로 합법적으로 선출된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보다 미국의 지지로 자칭 임시대통령을 선언하고 공공연히 쿠데타를 선동하는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을 지지하거나 옹호합니다. 우리 정부도 과이도를 임시대통령으로 승인했지요. 그러나 유엔과 중국, 러시아를 비롯한 세계 대부분 나라들은 여전히 마두로 정권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국내 문제에서는 민주주의와 평화를 옹호하는 언론들이 국제문제에서 뒤집힌 시각을 보여주는 것은 미국식 국제관계 관점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신흥국을 침략할 때 명분으로 그 나라가 인권을 억압하는 독재정권이고 또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를 감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선전합니다. 실제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리비아, 시리아 등을 침공하면서 여성인권의 억압, 테러 지원, 대량살상무기 확보 등을 명분으로 내세웠습니다. 세계 대부분 언론들은 이를 그대로 받아썼는데, 국내 언론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조금 양식이 있는 언론이 ‘미국도 해당국도 모두 문제’라는 식의 양비론을 펴는 정도였지요.

이렇듯 진보적이라는 언론들조차 국내문제와 달리 국제문제에 대해서는 미국의 입장을 추종하거나 양비론을 펼치는 수준입니다. 심지어 국내 일부 진보정당은 미국식 현실주의 관점과 구별하여, 미국식 자유주의(이상주의)를 “인류 보편적 가치와 외교정책의 도덕성을 강조하면서 교류협력과 제도를 통해 전쟁을 막고 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진보적 관점’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자유주의(이상주의)와 현실주의의 화해를 통한 새로운 외교 패러다임을 추구하자는 취지”로 “진보적 현실주의”를 제시합니다. 구체적으로 “미국의 이익을 추구하면서도 그것은 타자의 이익과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타자가 번영할 때 미국도 번영하고, 타자가 안전해질 때 미국도 더욱 안전해질 수 있다”(‘한반도와 동북아 평화’ <진보정의연구소> 2018.2)는 것입니다.

미국이 자국 이익을 추구하면서도 타국의 안전과 번영을 보장하는 그야말로 이상적이고 착한 제국(?)이 되기를 바라는 이런 주장을 어찌 이해해야할까요? 이런 주장은 한마디로 미국식 관점과 입장을 인정한 전제에서 자국의 이익과 안전을 보장받는 것이 ‘진보적 현실주의’라는 것입니다.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수용하고 그런 전제에서 자국의 안전과 번영을 보장받자는 입장입니다. 이런 시각에는 미국 패권질서에 대한 비판도 없고, 옳고 그름의 가치판단도 없습니다. 있다면 다른 나라가 어찌되든 그 질서 아래서 자국의 안위만 지키겠다는 것입니다. 일제강점기 일본과 싸우지 말고 자치권을 보장받자는 주장과 유사합니다. 이것은 진보적 관점이 아니라 ‘외세 굴종적 관점’이자 나아가 친미적 관점의 변종일 뿐입니다.

3. 상호존중과 주권평등의 국제관계 관점

국제관계에 대한 진보적 관점이란 미국 중심의 세계패권질서를 반대하고 각국의 주권 평등과 평화의지 실현을 존중하는 관점입니다. 진보란 세계 인민의 지향과 요구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소수의 권력자, 가진 자들을 제외한 전 세계 인민은 모두 평화와 호혜의 국제관계를 바랍니다. 종교, 이념, 역사, 인종이 달라도 서로 호혜와 평등으로 필요한 것을 주고받으면서 평화롭게 살기 바랍니다. 이 열망에 의거한 국제질서 수립이 바로 ‘상호존중과 주권평등의 국제관계 관점’이라고 합니다. 사실 상호존중과 주권평등은 이미 국제법적으로 확립된, 유엔 등 국제기구의 구성과 운영의 보편적 원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이 주권평등이 제대로 구현되지 않고, 미국식 자유주의 강요와 군사력에 의한 불평등과 굴복이 정상인 것처럼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국제관계의 진보적 관점은 미국 패권질서를 정당화하는 이상주의와 현실주의 관점을 부정하고, 자주권과 주권평등의 원칙을 제대로 실현해 국제관계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관점입니다. 곧 미국 중심의 패권질서를 바꾸어 존중과 평등의 국제관계를 실현하려는 변화의 관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제관계에 대한 진보적 관점은 미국 중심의 패권질서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각국의 모든 자주적 입장과 실천을 지지합니다.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 질서가 새로운 주권존중의 관계로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 따라서 미국의 힘에 의한 압박과 위협에 굴복하지 않고 맞서 나가는 모든 나라의 자주적 의지 표현을 정당한 행위로 옹호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국제관계를 보면 자국의 자주권을 지키려는 시리아와 이란, 베네수엘라 정부를 지지하게 됩니다. 또 미국의 불법 부당한 제재에 맞서 자국의 자주권을 지키려는 나라들을 응원하게 됩니다. 내정간섭 중단은 이미 국제적으로 합의된 원칙입니다. 그럼에도 미국은 친미적인 사우디아라비아나 이스라엘이 온갖 인권탄압을 가하는 데는 눈을 감고, 반미·비미(非美) 국가들에만 인권 운운하면서 내정간섭과 쿠데타 공작을 일삼습니다. 이렇듯 국제법과 규범을 무시한 미국의 이기적 행동, 즉 미국 예외주의를 무슨 규범인 양합니다. 주권평등의 진보적 관점은 국제관계에서 이런 예외주의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미국은 핵무력과 달러라는 패권적 지위를 남용해 공포와 제재의 몽둥이로 굴종을 강요하는 이기적이고 자의적인 국제관계를 만들었습니다. 상호존중과 주권평등의 관점은 미국의 이런 폭군적 행태에 맞서 자체의 핵무력 등 군사력을 강화하고, 자체의 통화주권과 경제력을 키우는 모든 나라의 정책을 지지합니다.

2018년은 미국의 핵패권이 사실상 무너진 역사적인 해입니다. 바로 핵무력을 완성한 북한(조선)과 중국, 러시아가 미국의 부당한 군사적 압박에 공동으로 대항하는 전략적 단결을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미국이 핵을 가지고 위협하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그 이후 미국의 군사패권이 무너지면서 세계 각국의 전쟁이 끝나가고 있습니다. 시리아전쟁, 아프가니스탄전쟁이 사실상 끝났고, 예멘전쟁, 리비아전쟁도 휴전으로 가고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미군철수가 시작되었고, 사우디아라비아와 괌에서도 부분적인 미군무력의 철수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코로나19 펜데믹을 계기로 유엔 사무총장은 세계 11개국 정전 결의를 요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렇듯 미국의 ‘끝없는 전쟁’전략은 실패로 끝나고 있습니다. 국제관계의 진보적 관점은 이 모든 국제적 평화 노력을 지지합니다.

이렇듯 미국 패권을 떠받쳐온 군사 패권이 무너지자 이제 경제 패권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국제관계의 진보적 관점은 미국의 경제패권이 흔들리는 모든 현상을 주목합니다. 중국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브릭스(BRICS)의 발흥과 중국식 세계화 모델인 ‘일대일로’, 그리고 산유국인 러시아, 베네수엘라, 이란, 이라크 등의 석유거래에서 달러 배제, 세계달러결제시스템인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를 배제한 새로운 국제통화결제시스템 개발 등은 미국주도의 경제질서를 바꾸려는 국제적 노력입니다.

사실 이미 2008년 금융위기로 미국 중심 세계경제질서는 금이 갔고, 2020년 코로나19 창궐을 계기로 그동안 쌓아온 부채의 바벨탑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대봉쇄(Great Lockdown)라고 불리는 경제봉쇄격리의 장기화, 국제공급망의 파괴, 수요 급감 등은 대규모 파산과 사상 최대의 실업자를 양산하고 있습니다. 이를 막아보려 무제한 돈을 찍어내는 양적완화를 하고 있지만 그 결과는 달러의 신뢰를 추락시켜 결국 달러패권을 무너뜨리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 과격하게 전개되는 중‧미간 경제분리에 의한 국제분업체제의 붕괴는 미국 경제패권의 조종(弔鍾)입니다. 이 조치로 미국은 정권이 바뀌어도 과거로 돌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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