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의 [송하맹호도] 이전에 정홍래의 [산군포효]라는 호랑이 그림이 있었다.
정홍래는 숙종 때 궁중화원이었다.
두 그림의 연관성은 소나무와 호랑이의 자세에서 발견된다.
호랑이의 자세는 비슷하지만 표정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정홍래의 호랑이가 제목처럼 포효하고 있다면 김홍도의 호랑이는 단정하다.
정홍래는 호랑이를 산군(山君)이라고 규정했다. 산에 사는 군자, 혹은 왕이란 뜻이다. 이중적 표현이다. 산속의 왕이라는 표현은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있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현실의 왕을 상징하지도 않는다. 결국은 선비, 혹은 군자의 상징으로 본 것이다.
그러나 공격적으로 울부짖는 모습은 생태성을 반영한 것이겠지만 현실성은 없다. 선비나 군자의 모습과 공격적인 표정의 호랑이는 맞지 않기 때문이다.
정홍래도 동물화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 화원이었다. 대표적인 그림으로는 매그림이 있다. 정홍래가 그린 매의 표정은 단정하고 결의에 차 있다. 어디에도 사냥매의 특징은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김홍도가 그린 매그림에는 일부 공격적인 요소가 있다.
정홍래의 호랑이는 공격적이고 매는 단정하다.
김홍도의 호랑이는 단정하고 매는 공격적이다.
정홍래가 김홍도와 작품을 견주지는 않았겠지만 김홍도가 정홍래의 그림을 참고하고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미루어 짐작된다.
정홍래의 그림은 민화나 무당그림의 산신령의 상징으로 연결된다. 하지만 김홍도의 호랑이는 소나무가 강조되고 포악성을 없애면서 선비의 상징이 되기 위해 발버둥친다.
민간신앙으로 정홍래의 그림이 남았다면, 조선이 망하면서 동시에 선비들도 망했기 때문에 선비의 상징으로서 호랑이도 사라졌다.
1910년대 일본은 호랑이정복단을 만들어 조선의 호랑이를 멸종시킨다. 호랑이를 잡으면서 일본 사나이의 기개와 용감성을 높인다는 이유였다. 잡은 호랑이는 살점을 모두 발라먹고 뼈는 갈아서 고약으로 사용했으며 가죽은 비싼 가격으로 팔았다.
사람들은 호랑이를 우리나라의 상징으로 규정하고자 한다. 축구국가대표를 상징하고 지금도 백두산 호랑이를 복원하기 위해 노력한다.
여기에는 호랑이의 용맹성으로 약자의 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바람도 분명히 녹아있다.
김홍도의 호랑이그림을 보면서 늘 이런 생각을 한다.
우리나라도 호랑이처럼 강한 나라가 되어 다른 나라에게 침략을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동시에 강한 나라가 되더라도 약한 나라를 침략하고 약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홍도의 호랑이처럼 총명하고 예의가 있으며 보편적 진리와 양심을 지키는 기개를 가졌으면 좋겠다.
그러고 보니, 이런 생각은 김구의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라는 글에 모두 나와있는 내용이다.
글 심규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