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해양 포유동물 군사적 활용


미 해군의 군용 돌고래 훈련 장면 ⒸUS NAVY

미국, 해양 포유동물 군사적 활용

사실 전쟁에 동물을 활용하는 아이디어는 그다지 새롭지 않다. 과거에도 말과 소, 코끼리가 군수물자 수송에 활용됐고 훈련된 비둘기, 즉 전서구를 군 통신에 이용하기도 했다. 첨단화·기계화가 이뤄진 지금도 경비와 감시, 탐지 임무에 군견들이 투입된다.

해양동물의 군용화는 20세기 중반 들어 미국, 소련 등 군사 강대국들을 중심으로 연구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미 해군은 1960년대부터 ‘해양 포유류 프로그램(NMMP)’이라는 이름으로 해양동물의 군용화 가능성을 모색해 왔다.

이후 1962년 돌고래, 바다사자 등 포유류의 엄청난 군사적 잠재성을 알아챈 미 해군이 캘리포니아 포인트 무구 기지에 이들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시설을 설치한다. 여기서는 돌고래의 음파 탐지 능력, 심해 잠수 능력, 그리고 이 능력을 수중 목표물의 탐지 및 위치 표시 같은 군사적으로 유용한 임무에 활용할 수 있는 지가 집중적으로 연구됐는데 1965년 <터피>라는 해군 소속 돌고래가 수면과 수심 60m의 둥지를 오가며 도구와 메시지의 전달에 성공하면서 해양 포유류의 군용화 가능성이 입증됐다. 터피는 훈련을 통해 조난당한 잠수부를 발견, 안전 지대까지 데려오기도 했다.

미군이 이들 ‘동물 수병’에 관심을 주는 이유는 명확했다. 일단 무엇보다 수중에서의 감각과 활동 능력이 인간은 물론 기계와도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뛰어나다. 지능도 매우 뛰어나다. 돌고래는 IQ 60~90 수준으로 개(군견)보다도 우수하다. 게다가 월급을 주거나 의복을 제공할 필요도 없으며 혹여 작전 중 전사를 하더라도 국립묘지에 안장한다거나 유가족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할 필요도 없다. 극단적인 표현이지만 동물 수병은 ‘살아 숨 쉬는 군 장비’일 뿐이다.

군인 1명이 입대해 제대할 때까지 평균 400만 달러(약 37억 원)의 비용을 쓰고 있는 미군 입장에서 이런 비용적 메리트는 결코 무시 못할 장점이다. 이에 1967년경 미 해군은 NMMP의 활동을 기밀로 처리했고 대규모 비밀예산을 투입, 연구와 훈련에 박차를 가했다. 이들의 활동이 다시 공개된 것은 냉전이 종식된 이후인 1990년대부터다.

다양한 임무에 활용되는 해양 포유동물들

현재 알려진 바로는 미 해군은 5개의 군용 해양 동물 훈련·운용팀을 보유하고 있으며 총 75마리의 남방 큰돌고래와 35마리의 캘리포니아 바다사자가 배속돼 있다. MK 4~MK 8로 명명된 이들 팀 중에서 MK 4·7·8팀은 돌고래, MK 5팀은 바다사자, MK 6팀은 두 동물을 함께 운용 중이다.

특히 각 팀들은 해군의 명령이 하달되면 수송기를 이용해 72시간 내 지구 상의 어느 바다라도 돌고래와 바다사자를 실전배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또 작전 투입 지역의 해양 환경에 빠르게 적응해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평상시 하와이에서 알래스카에 이르는 다양한 수온과 환경을 가진 해역에서 훈련을 거친다.

미 해군의 공식발표에 따르면 MK팀의 해양 동물들에게 부여된 임무는 기뢰 탐지, 적 침투에 대비한 항만 및 해군 자산 경계, 해양에 투기된 자산의 발견 및 회수다. 이중 가장 중요하고도 핵심적인 것은 단연 기뢰 탐지다. 5개 팀 중 돌고래를 운용하는 3개 팀에 기뢰 탐지 임무가 할당됐다. 구체적으로 MK 4팀은 계류기뢰, MK 7팀은 해저기뢰의 위치 파악에 특화돼 있으며 MK 8팀에게는 해병대 및 육군의 상륙작전 시 상륙함의 안전한 이동루트 파악이라는 임무가 부여돼 있다.

각 팀에 소속된 돌고래들은 수신호 등을 통한 조련사들의 지시를 받아 기뢰 탐지에 나서는 데 기뢰로 의심되는 물체를 발견하면 사전에 훈련된 동작을 해서 탐지사실을 알리고 해당 지점에 부이를 띄워 위치를 표시한다. 이 같은 일련의 행동을 하는 동안 기뢰를 건드리지 않도록 훈련돼 있지만, 실수로 건드려도 기뢰가 격발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는 게 해군측 설명이다. 돌고래는 선박, 잠수함 등 기뢰의 원래 목표물과 비교해 덩치나 중량이 월등히 적어 격발을 일으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훈련에서만큼 실전에서도 정말로 효과를 발휘할까. 의구심은 버려도 좋다. 지난 2003년 제2차 걸프 전쟁 당시 MK팀의 돌고래가 실전 투입됐으며 움콰스르 항구 주변에 설치된 기뢰와 수중 부피트랩을 무려 100발 이상 성공리에 탐지해냈다. 이때 활약한 베테랑 돌고래 중 일부는 현재 고향으로 돌아와 워싱턴주의 브래머턴 해군기지와 코네티컷주의 그로턴 해군 잠수함 기지에서 원자력 잠수함 경비 임무를 맡고 있다.

각종 수중 자산의 발견 및 회수는 수중에서의 민첩함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바다사자팀(MK 5팀)의 몫이다. 이 팀은 1970년 11월 수심 50m 해저에 가라앉은 대(對)잠수함 로켓 아스록(ASROC)의 회수를 시작으로 여러 건의 회수 임무를 수행했으며 훈련에서는 바다에 추락한 항공기 잔해 속에서 모의 인체를 건져내는 데도 성공했다.

마지막 MK 6팀에게는 항만 및 해군 자산 경계 임무가 맡겨졌다. 1971년과 1972년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으며 1987년 10월부터 1988년 6월까지는 바레인의 미 해군 기지를 지켰다. MK 6 팀의 돌고래는 수중으로 침투하는 적 잠수부를 발견하면 뒤에서 은밀하게 접근, 몸에 부착된 장비로 산소탱크를 때리도록 훈련 받는다. 그러면 장비에서 부이가 방출돼 아군에게 적 침입 사실과 위치를 알려준다.

바다사자는 한층 능동적이다. 아예 상대방의 수족을 결박하는 장비를 갖추고 직접 제압에 나설 수도 있다. 대개 잠수 침투요원은 고도로 훈련된 특전요원이기 때문에 반격에 나설 수 있지만, 이동속도와 민첩함에서의 우위를 무기로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고 한다.


수송기를 이용한 미 해군의 군용 돌고래 공수 장면. 이들은 72시간 이내에 지구상 어디라도 투입될 수 있다. ⒸUSAF

소련이 육성한 돌고래 자살 특공대

미 해군의 MK팀의 모든 임무는 방어적이다. 미 해군은 적 살상, 함선 파괴 등 공격 훈련을 시킨 적이 전혀 없다고 주장한다. 돌고래와 바다사자는 사람이나 물체를 식별하는 정도일 뿐 적과 아군은 구분해내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공격 임무에 투입했다가는 자칫 아군을 공격할 수도 있다는 것. 특히 미 해군이 보유한 공격무기들이 이미 속도, 사거리, 파괴력 등에서 해양 동물보다 훨씬 앞서 있어 굳이 위험부담을 안고 공격에 동원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해양동물의 군용화 연구가 시작된 이래 그 가능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꾸준히 있어 왔다. 과거 구 소련의 경우 미국에게 자극 받아 1960년대 후반부터 해양동물의 군용화 연구를 시작하면서 실제로 관련 연구를 수행하기도 했다. 돌고래의 몸에 폭약을 부착하고 적함에 돌진, 자폭하도록 훈련한 것이다. 돌고래 자살 특공대를 육성한 셈이다. 냉전 시절 해상전력에서 미국보다 뒤처졌던 구 소련에게 돌고래는 은밀한 접근과 타격이 가능한 고효율 저비용의 매력적 무기였다.

소련군 참모본부에서 10년간 근속한 빅토르 바라네츠의 주장에 따르면 이들 돌고래는 선박의 스크루 소리만 듣고 소련제 잠수함과 다른 국가에서 만든 잠수함을 구별할 수 있으며 물속에 빠뜨린 반지도 찾아낼 만큼 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연구와 훈련은 우크라이나 남쪽 크림반도의 카자챠 부흐타에서 이뤄졌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이 연구는 1991년 구소련의 붕괴로 중단됐다.

한편 지난 2019년 4월, 노르웨이 해안에서 러시아 군용 돌고래로 추정되는 벨루가가 발견되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 벨루가는 몸에 <상트페테르부르크 장비>라고 적힌, 카메라가 달린 하네스를 착용하고 있었다. 이 벨루가는 사람을 보고도 경계심을 드러내지 않았다. 또한 물에 빠뜨린 아이폰을 주워 준다던지, 잠수사가 들고 있던 칼을 빼앗는다든지 하는 특이 행동을 보였다.

출처 사이언스 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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