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군부의 쿠데타 결단 동기” 시론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 결단 동기” 시론

미얀마의 실권자인 국가고문 아웅산수치가 이끄는 NLD가 총선 승리의 샴페인을 터뜨렸는지는 모르지만 지난 2월 1일 미얀마 군부는 쿠데타로 그녀와 그의 앞잡이로 2018년 2월 취임하여 아직 2년의 임기가 남은 현직 대통령 윈민(Win Myint. 1951년생)을 구속하고 라잉(Min Aung Hlaing. 1956년생) 국군총사령관이 전권을 장악했다. 군사정권의 각료는 국군계 정당인 연방단결발전당(USDP)으로 2011년부터 2016년 초까지 대통령을 맡았던 군 출신의 우파인 테인세인(Thein Sein. 1944년생으로 중국계 버마인 1944년생, 한자성명 吴登盛오등성) 정권의 전직 각료를 다수 등용했다.

미국, 유럽, 일본, 인도, 국제연합, EU 등에서 아웅산수치 등의 석방과 민정 복귀를 요구하는 비판과 시위가 일고 있다. 특히 미국 민주당 바이든 행정부는 다시 경제제재를 모색하고 있지만, 미국과 미얀마 사이의 교류는 거의 없기 때문에 제재의 효과는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군이 내세운 표면적 이유는 선거부정이다. 많은 지역에서 투표권자가 투표권을 정당하게 행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 외에도 깊은 속사정들이 있다.
이번 선거 결과에서 투표수와 개표수가 공시되지 않는 등 문제가 있었다는 이유로 군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 공개적인 이유 외에도 군이 봉기한 것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민족자주의 측면에서 아웅산수치를 민주화운동의 상징으로 띄운 영국을 선두로 한 서방의 책임이 매우 크다. 미얀마는 185개 민족으로 이루어진 다민족 국가이고 아웅산수치는 영미의 지원에 크게 의존하는 개방정책을 추구하지만 정치적으로도 소수민족과 얽힌 문제를 해결하는데서 많은 한계를 드러냈다.

첫째, 2006년에 미얀마 수상인 Thein Sein(1944년생, 중국계 버마인으로 이름은 吴登盛오등성)장군은 중국과 카친 주의 미쏘네(Myitsone/密松밀송]에 1,055메가와트(팔당댐 1999년에 80메가와트에서 120메가와트 증설) 규모의 대규모 수력발전소 건설을 비롯하여 여러 개의 댐을 건설하여 2만 메가와트의 전력을 생산하는 협약을 체결, 생산되는 전력을 카친 주에서 소비하고 남은 전력 대부분은 중국에 판매할 예정이었다. 2009년 공사에 착공했지만 영국에 본부를 둔 카친독립기구(KIO)가 영미의 후원 아래 건설을 방해했고, 카친독립군(KIA)과 일본자본도 이 발전소 건설을 반대했다. 환경단체 등의 시민운동이 개입하고 아웅산수치가 반대운동에 앞장서자, 2011년 9월 테인세인 대통령은 국회에서 자신의 임기 동안 발전소를 건설하지 않겠다고 폭탄선언을 했고, 중국은 관리 인력만 남겨둔 채, 공사를 중단하고 철수했다.

2012년 5월 야당단체는 댐 건설을 위해 이주한 주민들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요구했지만 대부분의 이주자들은 새로운 생활조건이 더 나아졌기 때문에 원거주지로 돌아갈 의향이 있는 주민이 거의 없었고 주민들도 중국의 투자에 반대하는 조직들이 댐 건설 저지운동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을 알아버렸다.

아웅산수치가 집권한 2016년 7월 4일에는 중국 외교관과 미얀마 정부관계자가 미쏘네 댐 건설 재개를 위해 교섭하는 사실이 한 주민에 의해 포착되었고, 2016년 8월 아웅산수치는 중국을 공식 방문하여 리커창(李克强)총리와 회담하는 자리에서 양국민의 복지 증진과 상생을 위해 미쏘네 수력발전소 등 큰 프로젝트의 대한 협력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2019년 1월 29일 미얀마 정부의 고위관리는 ‘오래 전에 중단된 미쏘네 수력발전소 공사의 재개를 희망하는’ 공개 발언을 했다. 그는 반대 캠페인을 벌이던 당시의 문제들을 거론하면서 그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더라도 규모를 줄여서 중국이 이 프로젝트가 진행해 줄 것을 기대한다고 했다. 하지만 중국은 ‘수력발전소’ 문제를 기화로 중국의 돈을 요구하는 것‘이라는 여론으로 맞섰다. 2019년 3월 18일, 아웅산수치는 국내외의 복잡한 세력관계를 인식했고, 미얀마의 발전을 위해 중단된 이 수력발전소 건설에 대한 희망을 피력했다. 이에 대해 중국 측은 한때의 불쾌감을 잊게 해 주기는 하지만 미얀마(아웅산수치)의 실수를 그대로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고 카친 주민들 사이에도 이 댐 건설에 대한 찬반양론이 더욱 팽팽해 졌다.

둘째, 미얀마에 살고 있는 서로 민족, 언어, 언어, 종교가 다른 185개 민족 중에서 정부가 인정하는 민족은 135개이다. 이와 같은 다양성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서로를 패로 갈라 싸우게 만들었다. 이 가장 큰 책임은 1차적으로 영국에 있다. 미국, 프랑스, 중국 특히 장개석의 중화민국(현재의 타이완)도 일단의 책임이 있지만.

미얀마 동북부 와주(Wa State/중국어 佤邦와방/정부 명칭은 샨 주 제2특구)에서 1989년 조직된 와주연합군(United Wa State Army.UWSA/佤邦联合军)은 이 지역의 사실상 집권당인 와주연합당(UWSP)의 군사조직으로 약 20,000–25,000명의 소수민족 병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 지역에는 1949년부터 1968년까지 국민당 잔당이 살인, 강도, 강간 등 패악을 저질렀고, 미얀마 군부가 중국(중화인민공화국)의 지원을 받아 이들을 축출할 수 있었다. 와족은 중국어(운남어)와 한자를 쓰고 중국 통화인 위안화를 사용하며 미얀마 통화인 짯을 쓰지 않는다.

UWSA는 2009년 1월 1일 영토를 ‘Wa State Government Special Administrative Region’으로 발표했고, 사실상의 대통령과 부통령이 있다. 미얀마 정부가 Wa주의 국가주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는 않지만 미얀마군부(Tatmadaw)는 샨주 남부군(SSA-South)와 같은 민족주의 무장세력과의 전투를 위해 UWSA와 자주 동맹을 맺었다. 사실상 와주는 미얀마로부터 독립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으로 미얀마의 모든 영토주권을 인정한다. 2013년 쌍방(미얀마군과 Wa군)은 평화협정에 서명했다.

기독교신자가 많은 카친 주나 아편으로 돈 맛을 아는 샨 주의 소수민족은 친 서방화되었으나 상좌부 불교 신앙이 강한 지역에서는 영미에 대한 민족적·종교적 반감이 크다.

셋째, 가장 중요한 것은 아웅산수치 정부의 로힝야(Rohingya)족 문제에 대한 무능함이다. 로힝야 족은 미얀마 국가의 정체성에 상당한 위협을 주고 있다.

미얀마에서는 로힝야라는 말을 잘 쓰지 않고 ‘벵골인(Bengali)’이라고 부른다. 로힝야 족은 1784년 불교도와 무슬림이 공존하던 아라칸(Arakan) 왕국이 버마 왕국에 패전하여 멸망하자 1785년부터 대부분이 아라칸을 떠나 벵골 지역으로 이주했고 이 지역에는 불교도 중에서도 아주 엄격한 상좌부 불교(Theravada Buddhism) 신자가 다수를 차지하고 살았다. 1940년에 일본의 지원을 받는 버마독립군이 이 지역에 쳐들어오자 영국은 이들이 인도로 공격해 오는 것을 막기 위해 인도(현재 방글라데시)의 치타콩(Chittagong)에 이주해 살던 로힝야 족을 남쪽으로 310km 떨어진 아라칸(현재 Rakhine 주)으로 강제 이주시켜 민족과 종교 갈등을 부추겨 무장독립운동세력을 제압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서방은 수천 수백 년 전에 세계 각지로 흩어진 유대인들을 모아 이스라엘 국가를 건설해 많은 전쟁을 치르면서도 유엔을 동원하는 위선과 속임수의 남아시아 판을 버마 안에 만들려고 했지만 상좌부 불교도를 주축으로 한 아라칸 인과 버마 군대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미얀마에 들어온 로힝야 인은 서부 국경지대인 라카인 주 부티동(Buthidaung)과 마웅도(Maungdaw)에 주로 살다가 불교도와 대립이 격화되면서 상호 수많은 갈등 끝에 처음에는 방글라데시에, 다음에는 동남아 각지에 난민으로 이주했다가 다시 귀환하기를 되풀이했다.

그 후의 우여곡절은 생략하고 1988년 로힝야가 아웅산수치 등의 소위 ‘민주화운동’을 지지했지만 2012년에는 두 교도 사이의 충돌이 격렬해 사상자가 발생했고 6월 10일에는 테인 세인 정부가 라카인 주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아웅산수치가 집권한 후인 2017년 8월 25일에는 라카인 주에서 활동하는 무장조직인 아라칸·로힝야 구세군(ARSA)이 마웅도 주변의 경찰시설 등을 습격했고, 미얀마 군이 즉시 대규모 반격에 나섰기 때문에 수많은 사망자가 나오는 충돌이 빈발했다. 아웅산수치는 국내 여론을 의식하여 유엔조사단의 입국을 불허했다. 한국인 명문가의 이 아무개 씨(1956년생)도 유엔조사단의 일원으로 참여했지만 나는 힘이 없으니 그 자세한 취재는 힘센 언론기관이 맡아 주시라.

‘불교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아라칸 인은 민족정당으로 상좌부 불교의 정당조직인 아라칸 국민당(ANP)의 ‘벵골인’ 추방 공약을 지지하고 있고 이들의 국내 영향력은 더욱 커져 갔다. 아라칸 인은 2013년 이전에 군부정권이 로힝야에 인정해 주던 국적과 참정권 등의 권리도 불법이라고 인식했고, ‘로힝야’라는 단어조차도 증오하여 ‘벵골인‘이라고 지칭한다. 상좌부 불교도 주민은 로힝야에 대한 지원방해와 유엔의 지원차량에 대해서도 공격했다. 불교도 주민은 일부 로힝야가 취재기자들에게 금품을 요구하기도 하고, NGO 관계자가 생활지원을 해 주어 잘 살고 있는 경우를 더욱 미워한다.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은 미얀마의 다수파인 불교도가 소수 이슬람교도인 로힝야 인을 박해하기 때문에 이들에게 주변의 관련국가에 난민지위의 인정과 보호를 요청했다.

2015년 11월 8일의 미얀마 총선거에서는 잠정적으로 인정되어온 로힝야의 참정권마저 박탈되었고 전국적으로는 아웅산수치의 국민민주연맹(NLD)이 압승했지만 라카인 주에서는 ‘반 벵골인’을 내세우는 아라칸국민당이 민족의회(상원)에서 12석 중 10석, 국민의회=인민의회(하원)에서는 17석 중 12석으로 대승했다.

국제적으로 고립된 로힝야 인에게는 이슬람 과격파 조직의 권유가 잇따랐다. 로힝야 인들은 과격파 무장집단인 로힝야연대기구(RSO)를 창설했고, 이들은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이라크와 팔레스타인 지역의 과격파들의 권유로 연계하는 정도가 늘고 있어 세계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2016년 10월부터 라카인 주에서 로힝야 인과 미얀마 인 간에 살인, 강간, 폭동, 방화 등이 잇따랐고, 그 소행을 두고 서방을 주축으로 하는 유엔 다수국과 서방언론은 한 패가 되고 미얀마 정부 다른 패가 되어 서로 상대방의 소행이라면서 대립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미얀마 국군의 라잉(Min Aung Hlaing. 1956년생)최고사령관(현재 쿠데타의 최고지도부 수장)은 한 기념식에서 라카인 주에서는 1942년의 위기가 다시 일어나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태평양전쟁의 버마 전투에서, ‘벵골인’이 영국 편을 든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군 개입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벵골인 테러리스트’가 ‘특정종교를 선동하거나 폭력적인 공격의 도구로 삼는다.’고 비난했다.

2018년 9월 21일 미얀마 국가고문실 대변인은 ‘(아웅산수치는) 유엔 조사단을 받아들이겠다고 한 적이 없다. 현지의 평화와 안정에 조사단은 역효과다‘라고 말했다. 10월 16일, 라잉 최고사령관은 펠트먼 유엔 사무차장과의 회담에서, “’벵골인’은 미얀마 민족이 아니다. 1942년에 (벵골인에 의해) 2만 명 이상의 라카인 인이 살해된 것이 진정한 역사이며, 숨길 수 없는 사실’이라고 주장했다(영국이라는 언급은 없었으나 1942년 영국이 로힝야 족에 부여한 임무를 뜻함). 이어 미얀마군은 ’벵골인’에 의한 불법점거나 ‘벵골인’ 테러리스트에 합법적으로 대처하고 현지인을 위해 안전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유엔의 인도적 지원에 대해 구호물자가 벵골인 테러리스트들에게 흘러들어간다는 의심이 있고, 그래서 라카인 인들은 유엔의 지원에 반대하고 그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로힝야 인을 지원하려면 미얀마의 정부기관과 연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서방, 특히 영미의 언론매체는 미얀마 군이 강간, 살인, 폭행, 방화를 저질렀다는데 초점을 맞춘 기사를 싣고 있지만 라잉 최고사령관은 페이스북을 통해 이를 부인하고 로힝야 인과 그 배후의 테러지원세력에 자위적 조치를 강화하겠다고 항변하고 있다. 그의 페이스북 담벼락은 정지와 해제, 삭제를 거듭하다가 2019년 9월 17일 이후 게시가 중단된 상태이다.

국제사회와 인도주의 단체(NGO)는 감정론에 치우치지 않는 냉정한 대응이 요구되는 한편, 인간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미얀마 관민의 일치된 로힝야 인에 대한 악감정을 누그러뜨리고 상좌부 불교도를 이해시켜야 한다.

영국은 미얀마를 식민지배하면서 남긴 종교간-민족 간의 갈등 유발에 대한 원인제공 사실을 인정하고 유엔을 동원할 것이 아니라 영국 스스로가 문제 해결의 전면에 나서고 국제사회는 로힝야 인에 대한 신병보호와 효과적인 인도지원을 동시에 서둘러야 한다.

끝으로 영미가 중심이 되어 로이터(Reuters)와 AP 등의 통신사와 BBC, 그로부터 뉴스를 배신 받는 신문방송들은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노선을 지향하는 미얀마 군부에 적대적인 뉴스를 양산하고 있다. 프랑스 국영 AFP통신은 좀 더 약은 보도 자세를 취한다.

제국주의 세력의 주특기는 쪼개놓고 다스리는 것이다(divide and rule). 이 주특기를 사용하는데 지금까지 가장 유용한 도구는 매스미디어였으나 지금은 소셜미디어가 그 자리를 넘보고 있다. 하지만 소셜미디어에 대한 통제는 언론자유를 획득하기 위해 싸워온 매스미디어를 무력화시킬 만큼 전 세계적으로 힘을 발휘한다. 페이스북과 유투브의 막강한 힘 앞에 국가주권도 휘청거린다. 매스미디어의 편파·왜곡·피상적 보도의 중단과 소셜 미디어의 미국 예속에서 탈피해야 올바른 여론이 형성된다는 점도 수요자들이 깨달아야 한다.

©유일상(건국대 명예교수, 저널리즘 전공)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