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글> 미-유럽 대중국 공조 어렵다

번역자주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유럽 등 핵심 동맹국들과의 관계를 복원하고 중국에 맞서는 공조를 강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직면하고 있는 ‘중국의 도전’이란 것이 모호한 개념이기에, 결국 복원할 수 있는 것은 미-유럽 간 ‘분위기’일 뿐 실제 정책 변동의 의미는 제한적일 것이라는 것이 환구시보의 분석이다.

원제목: 미-유럽 관계 복원은 쉽지만, 대중국 공조는 어렵다
출처: 환구시보 사설 2020-12-03 21:49 (현지시각)


▲ 오바마 재선 취임 직후인 2013년 2월1일 바이든 부통령이 독일을 방문해 메르켈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사진 : AP/뉴시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화요일(12월 2일) 대선 승리 후 처음으로 중국을 언급하였다. 취임 후 대중국 무역정책을 즉각 조정하지 않을 것이며, 미국의 대중국 정책을 검토하여 일관된 전략을 세울 수 있도록 핵심 동맹국들과 협의할 것이라고 그는 밝혔다.
바이든이 미국과 동맹국 간 관계를 복원하는 데 공을 들일 것이라는 것은 이미 국제 전략계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미-유럽 관계 복원은 특히 잘 되리라 예측되는데, 왜냐하면 지난 몇 년간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은 바로 워싱턴과, 영국을 제외한 유럽 핵심 동맹국들과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보기에 가장 쉽게 복원될 수 있는 것은 미-유럽 간 ‘분위기’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찍이 유럽 동맹국들을 대놓고 비판하였는데, 메르켈 총리를 비롯한 유럽 지도자들을 영접할 때 예의를 갖추지 않은 적도 있었다. 그 외에도 워싱턴은 NATO 국가들에 군사비 증액을 압박하였으며, 무역에서는 유럽을 압박하여 화웨이와 ‘노르트스트림Ⅱ’(러시아-독일 간 천연가스관 건설 프로젝트-주) 문제를 놓고 동맹국들을 위협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긴밀한 동맹관계를 재건하려는 바이든의 태도는 유럽 국가가 바라마지 않던 바이며, 양측 모두 바이든 정부 출범 초기에 서로 보듬고 돈독함을 과시하고 싶은 바람을 갖고 있다.

그러나 미-유럽이 “손을 맞잡고 중국의 도전에 공동대응”한다는 근래 광범위하게 언급되는 전망은 표류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무엇이 중국의 서방에 대한 공통된 도전이고, 또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각각 직면하고 있는 ‘중국의 도전’이란 무엇인지를 정확히 설명하고 지속적으로 파악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이 공통으로 느끼는 ‘중국의 도전’은 중국의 부상이겠지만, 양측의 위기감은 그 정도에 있어 다르고 느끼는 방향도 다르다. 양측 모두 ‘서양의 상대적 쇠락’에 대한 불편함을 갖지만, 미국은 자신의 패권이 중국 굴기에 도전받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반해, 유럽이 더욱 중시하는 것은 경제적 경쟁이다.

서구의 상대적 쇠락은 큰 역사적 차원의 문제에 속한다. 미국과 유럽 모두 이러한 추세를 저지할 수 있는 집행 가능한 정책을 장기적으로 갖지 못한다. 이는 서방의 정치체제 상 특성에 기인한다.(※주-선거에 의한 빈번한 정권교체를 말함) 그러나 미국의 패권을 지키고 유럽의 경제적 이익을 증진하는 데 있어서는 구체적인 지렛대가 필요하다.

이는 미-유럽의 실제 전략적 고려에 있어서의 큰 차이점을 말해준다. 각자의 이익을 촉발시키는 관심사가 다르기에, 미-유럽이 “손을 맞잡고 중국의 도전에 공동대응”하자는 구호는 외치기는 쉽지만 실제 협력까지는 어려움이 많다.

미-유럽의 동맹을 복원시키는 동력기제도 한마디로 말하기 어렵다. 미국이 원하는 것은 자신이 주도하고 유럽이 종속하는 구조의 강화인데, 이를 통해 중국 굴기에 대한 억제 능력을 강화하고 그 과정에서 유럽이 미국의 말을 더 잘 듣도록 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유럽인들에게 있어 이 동맹의 복원은 유럽의 전략적 자주성을 더욱 인정받고, 미국과 유럽의 마찰을 줄이면서 그 바탕 위에서 미-유럽 연대를 격상시키는 것을 뜻한다.

패권을 유지해야 할 필요성 때문에 워싱턴은 지난 몇 년 동안 중국과의 관계에 있어 지정학적 경쟁을 경제적 이익보다 우선시해 왔다. 하지만 유럽인들은 그런 과격함을 원치 않는다. 그들은 발전을 더 중시하며, 대중국 관계에서 정치와 경제의 균형을 원한다. 화웨이와 ‘노르트스트림Ⅱ’ 프로젝트에서의 그들의 망설임도 이런 양자의 차별성을 보여준다.

만약 트럼프 행정부의 급진적인 대중국 정책을 바탕으로 미국 중심의 새로운 서방 연대를 추진한다면, 유럽은 선뜻 내키지 않아 할 것이며 새로운 마찰은 불가피하다. 반대로 만약 유럽이 서구 연대의 의미를 결정하고, 미국은 자원을 많이 쓰면서도 결정은 적게 하고, 대중국 정책이 유럽의 이익 쪽으로 쏠리게 되면 워싱턴은 또 틀림없이 싫어할 것이다.

지금은 워싱턴이 ‘마셜 플랜’을 추진하던 시대가 아니다. 미국이 서방 동맹국들에게 아낌없이 수혈해주던 것으로부터 점차 동맹국들로부터 더 많은 이익을 챙기려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렇듯 서방 동맹국들이 얻는 보너스가 끊임없이 얇아지게 됨으로써 미국은 대오를 인솔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곤경에 직면했다.

더 중요한 것은, 중국의 ‘도전’이나 ‘위협’이란 것이 상당 부분 억측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이다. 상대적으로 단 기간 내에 미-유럽이 “손을 맞잡고 중국의 도전에 공동대응” 할 만한 것이 없으며, 장기적으로는 너무 철학적이어서 공허해지기 쉽다.

따라서 중국은 미국과 유럽의 동맹관계 강화에 대해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좋다. 원래 워싱턴과 아시아태평양 동맹 관계도 지난 4년간 변덕이 죽 끓듯 했다. 미국과 유럽이 더 가까워지는 것은 중국에 얼마간 심리적 압박을 줄 것이긴 하지만, 실제적 정책 변동의 의미는 제한적일 것이다. 따라서 지금 중국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실력을 늘리는 일이다. 실력이 곧 ‘만유인력’이다. 그것은 보이지 않게 사물의 경중에 대한 느낌을 바꿀 것이며, 마침내는 편중되는 방향을 바꾸도록 할 것이다.

글 김정호 출처 민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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