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광물 캐고 있나?” “박테리아에게 맡겼습니다!”
국제우주정거장의 배양기 안에서 현무암 속 희토류 원소들을 추출해 낸 박테리아 스핑고모나스 데시카빌리스(Sphingomonas desiccabilis).
현미경 사진에 찍힌 박테리아가 열심히 암석을 먹어 치우고 있다. 돌을 녹여 생존에 필요한 영양 물질을 뽑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장소가 지구가 아닌 국제우주정거장(ISS)이다.
영국 옥스퍼드대의 찰스 코켈 교수 연구진은 10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국제우주정거장에서 미생물을 이용해 현무암에서 유용 광물을 추출하는 실험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는 말이 안 되지만 미생물로 바위치기는 우주개발을 성공시킬 기술이 된다는 말이다.
◇화성 중력 조건에서도 생물채광 입증
박테리아들은 수십 억 년 동안 지구에서 암석에 산성 물질을 분비하고 화학반응을 일으켜 생존에 필요한 물질을 뽑아냈다. 그 부산물로 니켈이나 리튬 같이 전자기기에 필수적인 희토류 원소가 나온다. 지구에서 구리와 금의 20%가 이처럼 미생물을 이용한 이른바 생물채광(biomining)으로 나온다.
코켈 교수 연구진은 생물채광이 중력이 거의 없거나 약한 소행성이나 다른 행성에서도 가능할지 알아보기 위해 우주정거장에 ‘바이오락(BioRock)’이라는 실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연구진은 작은 생물배양기 안에 소행성이나 달, 화성 등에 있는 화산암과 같은 현무암과 지구의 다양한 박테리아를 넣었다.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이탈리아 우주인 루카 파르미티노가 생물채광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ESA
3주 실험 결과 스핑고모나스 데시카빌리스(Sphingomonas desiccabilis)라는 박테리아가 중력이 거의 없는 우주정거장에서도 지구와 마찬가지로 현무암에서 란타넘, 네오디뮴, 세륨 같은 희토류 원소를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진은 원심분리장치로 배양기의 중력을 지구, 화성에 맞췄다. 화성은 중력이 지구의 3분의 1에 그친다. 역시 스핑고모나스는 현무암에서 희토류 원소를 뽑아냈다. 미생물이 광물을 추출하는데 중력이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말이다.
코켈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는 지구에서 이뤄진 생물채광 실험이 어떠한 중력 상황에서도 유용한 정보가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생물채광은 달이나 화성에 인류의 새로운 거주지를 세울 때 현지에서 유용 물질을 생산하는 데 활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우주기지 필요 자재, 현지 조달 추진
우주 식민지를 건설할 때 현지에서 필요한 물질을 조달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달이나 화성 기지 건설에 필요한 물질을 모두 우주로켓에 싣고 가면 우주개발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유럽우주기구(ESA)가 추진 중인 달의 유인 기지 상상도. 우주선진국들은 달이나 화성의 우주기지 건설에 필요한 자재와 우주인의 생존에 필요한 산소, 물 등을 현지에서 조달할 계획이다./ESA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오는 2024년부터 재개할 달 유인(有人) 탐사에서 지하에 매장된 얼음에서 물을 추출하는 실험을 할 계획이다. 물은 식수와 로켓의 연료가 된다. 우주인이 호흡할 산소도 물을 분해하면 얻을 수 있다. 내년 화성에 도착하는 NASA의 화성 탐사 로버(이동형 로봇) 퍼시비어런스는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에서 산소를 추출하는 실험을 준비하고 있다. 유럽우주국(ESA)도 지난 6일 영국 기업 메탈리시스와 달의 토양에서 산소와 알루미늄, 철 등을 추출하는 기술을 개발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이번 바이오락 실험은 바이오애스테로이드(BioAsteroid) 실험으로 이어진다. 바이오애스테로이드는 생물배양기 안에 현무암 대신 소행성에 있는 암석을 넣고 생물채광이 가능한지 알아볼 예정이다. 바이오락 실험은 ESA와 영국우주국의 지원을 받았다.
글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출처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