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사망사고 하루 약 3명꼴. 펄펄 끓는 용광로에 빠져 죽고, 돌아가는 벨트에 감겨 죽고, 문틈에 끼어 죽고, 떨어지는 돌에 맞아 죽고, 보이지 않는 방사능에 쏘여 죽고, …이 나라의 노동자들이 산업현장에서 생목숨을 잃고 있다. 당시 홀로 일했던 김용균 씨는 별다른 안전 장비도 없이 작업하다 벨트에 몸이 감겨 넘어 가 죽었다. 이후 경찰 조사가 시작되고, 사고 책임자 11명이 검찰에 넘겨졌지만, 원·하청 대표이사들은 처벌에 대상에서 빠졌다.
2018년 12월 11일 새벽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태안화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인 김용균(당시 24세) 씨가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숨졌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씨가 사망한 지 2년여 만인 2021년 1월 8일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이 국회를 통과했으나 노동 현장 반응은 싸늘하다. 산업재해 사망 사고 대부분이 중소 규모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현실을 법이 담지 못했다는 비판이 노동계에선 여전히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선 법 자체가 애매해 실효성이 없다는 전문가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이 나라 산재의 근본적인 원인은 딴 곳에 있다.
우리 사회에서 김용균을 비롯한 산업 현장에서 수 없이 희생자들이 나오는 이유는 이것 역시 일제의 잔재에서 찾아야 한다. 함경북도 성진제강소에서 돈벌이에만 눈이 어두웠던 일제는 공장 안에 원철로를 빼곡하게 들려다 놓고는 절연 장치도 없이 고압 전류를 흘려보내 쇳물을 녹이는 법을 사용해 철강을 뽑아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감전으로 숨질 것은 예고된 것이었다. 하루에 38명이 떼죽음 하는 참사가 벌어지기도 했다.
해방 된 후 이 사회의 산업재해는 사람을 생산의 도구로만 생각해 온 사업주들의 뿌리박힌 생명 경시에서 온 것은 두말 할 것이 없다. 일제한테서 배워먹은 기업가 정신을 해방 된 후에도 그대로 구사한 것이고, 우리는 김용균 참사가 결코 우연이 아니란, 그래서 나아가 일제로부터 그 원인을 찾는 데 방점을 찍어야 할 것이다.
해방 후 북측의 지도자는 성진제강소에 들러 노동자들의 생활 형편과 공장 실태를 돌아 본 결과 그 공장이 일제 강점기에 노동자들의 목숨을 앗아 간 ‘죽음의 고역장’이란 사실을 듣고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고압 전류가 흐르고 독한 가스로 앞을 내다 볼 수 없을 정도의 자욱한 매연 속에서 땀을 흘리며 일하는 노동자들을 바라보곤 “강철이 아무리 귀중하다 해도 우리 노동자들의 생명과는 절대로 바꿀 수 없습니다. 강철을 적게 생산해도 좋으니 우리 노동자들의 원한이 서린 원철 공장을 없애버려야 하겠습니다”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이 지시는 지켜지지 않았다. 기업가들이 반대해서가 아니고 오히려 노동자들 스스로가 “새 조국을 건설하는 데 한 톤의 철강이 귀중한 마당에 생산을 중단할 수 없다”고 고집했기 때문이다. 참말이냐고 믿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지도자는 철강을 뽑는 새로운 방법을 연구하게 해 성공한 후 1949년 2월 그 철강 공장을 흔적도 하나 남기지 않고 폭파해 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그 ‘죽음의 고역장’은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다.
2012년 1월 8일과 1949년 2월을 대조해 본다. 무려 72년이란 시간의 격차, 그것도 수많은 노동자들이 죽은 다음에야 우리 국회는 본회의를 열어 중대재해법을 의결했다. 산재 등으로 노동자가 숨지면 해당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는 1년 이상 징역이나 10억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받고 법인이나 기관도 50억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는 것이 핵심이다. 사업주나 법인이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다만 5인 미만 사업장의 사업주는 산업재해 처벌 대상에서 제외됐고, 50인 미만 사업장은 3년 후 법이 적용된다. 작은 공장에서 산재가 더 많이 발생하는 마당에 이 법이 적용할 곳이 없을 곳에 적용하려 만든 것은 불을 보듯 하다. 김용균 사망 후 경찰 조사가 시작되고, 사고 책임자 11명이 검찰에 넘겨졌지만, 원·하청 대표이사들은 처벌에 대상에서 빠지면서 산재 사망사고를 막으려면 경영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김씨 사망 이후에도 하청 노동자 산재는 반복됐다.
태안화력에선 지난해 9월에도 협력업체와 계약한 화물차주가 갑자기 굴러 떨어진 스크루에 깔려 숨졌고, 두 달 뒤 인천 영흥발전소에선 안전 장비 없이 일하던 하청업체 노동자가 또 숨지면서 ‘위험의 외주화’를 규탄하는 움직임이 거세졌다. 이달 3일에는 현대자동차 울산1공장에서 50대 협력업체 근로자가 청소 중 기계에 끼여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숨지는 일도 발생했다. 이런데도 최근 임명된 장관 하나는 노동자의 실수 때문이라고 했다.
끊이지 않는 산재 속에 김용균 씨 어머니인 김미숙 씨는 지난해 8월 ‘안전한 일터와 사회를 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관한 청원’이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동의자 10만 명을 돌파하면서 국회로 넘어갔다.
그러면 아무리 사회적 여론이 들끓고 강력한 법이 만들어져도 왜 산재는 계속돼 OECD 산재 1위 국가 되었는가? 그 이유는 우리나라 산재가 다른 나라의 그것과 다른 이유는 그것마저도 일제 잔재이기 때문이다. 군대에서 군번 따지고 구타가 심한 사소한 이유도 일제 잔재 때문이다. 그래서 과감하게 일제 잔재, 그 잔재의 뿌리를 뽑기 전에는 결코 산재 문제가 해결될 수 없을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공장을 폭파해 버리는 것 이상의 답은 없다. 사람의 목숨이 천하보다 귀하기 때문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이 법이 지난 7일 국회 법사위 법안소위를 통과하자 “죽음마저 차별하느냐”며 반발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도 법사위 소위안에 대해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죽어도 된다는 법, 발주처 책임을 묻지 않는 법, 책임 있는 대표이사가 ‘바지 이사’에게 책임을 떠넘길 수 있는 법이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아무리 목소리가 높아도 문제의 본질을 모르는 소리이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될 수밖에 없는 법이다”며 “경찰이 자의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법으로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의 발언도 문제의 본질을 모르는 소리이다.
윤석열과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올라간다고 일본 극우 신문들이 가뭄에 단비나 맞은 듯이 날뛰고 있다. 집값 하나 올라간다고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지고 국민의힘의 그것이 올라가는 한 결코 일제 청산은 어려울 것이고, 공장에서 산재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차별 때문이 아니고 이런 차별마저도 일제 잔재라는 사실을 몰라서는 진정한 대책이 무엇인지 모르는 반발이라고 할 수 있다. 민중의 계급 차별이 결코 민족 문제를 떠나서 생각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출처 :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