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조선)정치연구 <민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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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히 어린이 수난 시대라 할 수 있다.
보건복지부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아동학대 판정 사례가 총 3만 45건이라 한다.
4년 전에 비해 아동학대는 1.5배 증가했다. 코로나로 인해 아동학대는 증가 추세라 한다.
다락방에서 탈출한 창녕의 9살짜리 어린이 일기장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오늘은 안 혼났으면 좋겠다”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총제적인 모순이, 가장 약하고 여린 어린이에게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 같아 참으로 마음이 아프다.
언론에 자주 보도되는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은 이제 늘 반복되고 있어 둔감해질 정도이다. 아동학대를 당한 후 다시 옮긴 어린이집에서 또 학대를 받은 부모의 억장 무너지는 호소에 정말 이 나라가 왜 이러는가 싶다.
지난 6월 1일 발생한 9살짜리 어린아이 가방살인사건은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가로 44㎝, 세로 60㎝ 여행가방에 감금되어 숨을 쉬지 못해 죽은 아이. 7시간이나 가방에 감금되어 죽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이 나라에 사는 어른들, 부모들은 이 아이에겐 죄인이다.
아동학대 사망자는 최근 5년간 최소 145명에 달한다고 한다.
당시 국민의 공분에 떠밀려 민법을 개정하니, 처벌강화법을 만드니, 감시체계를 강화하니 하면서 정치권이 분분하였다. 6월 8일 문대통령은 청와대 참모진과의 내부 회의에서 “위기 아동을 파악하는 제도가 작동하지 않아 안타까운 사건이 일어났다”라며 “그 부분에 대한 대책을 살펴봐야 한다”고 지시했다고 한다. 그뿐이었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늘 되풀이되는 처방이다. 진정성이 없다. 그래서 국민들은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문제가 발생하면 발생시킨 개인 탓으로 돌리고 근본해결은 외면해 버린다.
9월 14일 발생한 ‘인천 라면형제’ 화재사건은 돌봄의 사각지대로 인해 발생한 사건인데도, 정부는 아동방임 부모에게 과태료 부가방침을 해법이라고 내놓았다.
자식이 학교 앞에서 차에 치여 죽임을 당해서, 다시는 그런 피해가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법을 만들어달라면서, 부모가 무슨 죄인처럼 국회의원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 흘려야 하는 나라… 8살 어린이를 짐승처럼 강간 폭행하고 겨우 12개월 밖에 받지 않아 올해 12월 13일 출소하는 조두순, 그를 피해 피해자가 도망 다니면서 살아야 되는 나라… 그 숱한 ‘n번방‘ 피해자 어린이들…
이 나라의 위정자들은 자기의 명예와 이익에 관한 일이라면 죽기 살기로 달려들면서, 연약하고 힘없는 어린이 등 기층 민중들의 생존 문제 해결에는 예산 타령, 이런저런 조건 탓을 하면서 세월아 네월아 시간만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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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시 대성구역 려명유치원 [사진= 조선중앙통신]
김일성 주석은 일찍이 ‘어린이는 나라의 왕’이라는 사상을 제시했다.
조국 광복 후 당시 김일성 장군은 해방된 조선에는 이제 임금은 없다고 하면서, 나라의 ‘왕’은 바로 어린이들이라고, 제일 좋은 것을 어린이들에게 주어야 한다고 늘 강조하였다. 그래서 ‘소년궁전’이라는 이름이 지어지고 조선은 ‘어린이 왕국’이 되었다.
1976년 김일성 주석이 직접 작성하여 제정된 <어린이보육교양법>(이하 <법>)은 그 사상을 구체화시킨 것으로 ‘사랑의 법전’이라고 불리워진다. 그 법 제12조는 “국가기관과 사회협동단체는 <제일 좋은 것을 어린이들에게>라는 원칙에 따라 어린이보육교양사업에 필요한 모든 것을 책임지고 보장하여야 한다.”라고 못을 박고 있다.
‘어린이는 나라의 왕’이라는 사상은 강고한 항일혁명투쟁 속에서 나왔다.
1936년 초봄에 ‘민생단’ 연루자의 억울한 감투를 쓰고 마안산 산골에서 병마와 추위에 떨며 울고 있는 수십 명의 아동단원들의 소식을 듣고 곧바로 찾아간 김일성 장군은, 불에 타고 찢겨진 자신들의 옷차림 때문에 선뜻 가까이 오지 못하는 부황이 뜬 얼굴의 아이들을 만났다. 그 모습을 보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같은 또래의 막내동생 모습을 떠올렸고 조선의 숱한 어린이들을 보았다.
김일성 장군은 군복안주머니에 소중히 싸고 또 싼 ‘20원’을 꺼내 아이들 옷을 해 입혔다. 그 돈은 강반석 어머니가 언젠가는 큰일을 위해 떠나갈 아들의 혁명사업을 위해, 삯바느질과 삯 빨래로 푼푼이 모은 돈이었다. 그래서 쓸 수 없는 돈이었다. 그런데 그 귀중한 돈을 너무나도 귀중한 아이들을 위해, 혁명의 미래를 위해 가장 값있게 쓰게 된 것이었다.
그때의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김일성 장군은 조국이 해방되면 어떻게 해서든 아이들에게 국가가 무료로 옷을 해입히는 제도를 세워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전후 재건을 거쳐 1950년대 후반기부터 국가가 옷을 지어 공급하기 시작했다.
물자낭비를 엄격하게 다루고 절약을 강조하는 이북이지만, 유독 어린이를 위한 것이라면 ‘계산’을 앞세우지 않고 국가의 ‘손실’을 오히려 큰 기쁨으로 여긴다고 한다.
<법>의 다음 조항들을 보면 ‘제일 좋은 것을 어린이들에게’ 라는 원칙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나는지 잘 드러난다.
제13조 … 현대적인 탁아소와 유치원을 제일 좋은 자리에 건설하고 악기, 놀이감, 출판물, 교구비품 같은 것을 갖추어 주어야 한다.
제14조 … 거리와 마을, 어린이들이 있는 곳곳에 아동공원과 놀이터를 꾸리고 여러가지 놀이시설을 갖추어 주어야 한다.
제16조 … 탁아소와 유치원에 젖, 고기, 알, 과일, 남새와 당과류 같은 여러가지 가공된 식료품을 보장하여야 한다…
제17조 국가는 어린이 옷, 신발과 여러가지 어린이용품을 제일 좋게 만들며…
제53조 … 문예기관은 어린이교육교양을 위한, 영화, 노래, 춤, 동시, 동화 같은 혁명적인 문예작품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어린이는 나라의 왕’이라는 사상은 “어린이들은 조국의 미래이며 공산주의건설의 후비대이며 대를 이어 혁명할 우리 혁명위업의 계승자들”(제1조)로 본다. 그래서 ‘제일 좋은 것’을 우선적으로 보장할 뿐만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전적으로 책임지고 나라와 민족의 역군으로, 정신도덕적으로 건전하고 건강한 체력을 가진 참다운 사회주의적 인간으로 키우려 한다.
20여 년에 걸친 항일대전 시기, 전장에서 쓰러져간 그 숱한 전우들은 김일성 장군의 유격대오에게 자식들의 장래를 부탁하는 유언을 남겼다. 그리고 자기들을 대신하여 아들 딸들을 혁명가로 키워달라고 호소했다, “전우의 아들이자 나의 아들이고 나의 아들이자 전우의 아들”이라고 절감한 김일성 장군은, “그 불쌍한 것들을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고 건실한 정의의 수호자들”로 키우리라 결심하고, 모든 고아들의 친아버지가 되었다.
이처럼 온 나라가 책임지고 어린이들을 지덕체를 겸비한 인재로 키우려는 ‘어린이 사랑의 사상’은, 치열한 항일대전 시기의 아동단 사업과 이후 유격대오에 망라된 마안산 아이들의 성장을 통해, ‘조국의 미래’를 어떻게 책임지고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확고한 신심에 뿌리박고 있다.
<법>은 ‘어린이 보육과 교양’의 정신과 그 뿌리에 대해 이렇게 분명히 밝히고 있다.
제4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어린이보육교양법은 조국의 광복과 인민의 자유와 행복을 위한 영광스러운 항일혁명투쟁에서 이룩된 빛나는 혁명전통을 이어받은 법이다.
▲ 북에선 4살부터 유치원을 다닌다.[사진= 조선중앙통신]
이북의 어린이 교양 방침은 정치사상교양을 우선에 두고 있다.
글자 쓰는 법과 셈 세는 법도 배우고, 예능과 체육도 배우고 익히나 가장 중점에 두는 교양은 정치사상교양이다.
아이들이 귀하고 귀엽다고 응석받이로 키우는 것은 결국은 자기만 고집하고 잘났다고 하는 개인이기주의를 낳게 되며 집단의 단결과 화목을 해치게 된다. 그래서 김일성 주석은 “어려서부터 집단을 사랑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고, “집단주의는 결국 사람을 사랑하는데 기초를 두고”있기 때문에 “동무들을 사랑하며 인민을 사랑하는 정신을 기르도록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법>제31조 국가는 어린이들을<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집단주의정신으로 교양한다.
정치사상교양 우선 방침은 그 내용을 법조문으로 못을 박고 있다. 제32조 “일하기를 좋아하고” “일하는데 버릇되도록 교양”하며, 제33조 공공“재산을 아끼고 사랑하며 귀중히 여기도록 교양”하고, 제34조 “례절바른 품성을 가지며 문화위생적으로 생활하는데 버릇되도록 교양하여야 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특히 법 제30조는 우리 이남에 시사하는 바가 너무 크다.
제30조 국가는 어린이들이 우리의 과거를 잊지 않으며 남조선인민들을 잊지 않으며 우리의 …미래를 사랑하도록 교양한다.
어린이를 훌륭한 인재로 키우는 막중한 책임은 어린이 교사 즉, 보육원 및 교양원에 달려있다.
1966년 김일성 주석은 <전국 보육원, 교양원 대회>에 참석하여, 어려운 조건 속에서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어린이를 성심성의껏 돌보는 그들의 노고를 치하하면서 보육원, 교양원의 막중한 임무에 대해 연설하였다. 연설에서, “오늘 보육원, 교양원들의 사업은 남의 집 아이 보개일이 아니라 공산주의건설의 후비대, 우리 혁명위업의 계승자들을 길러내는 영예로운 혁명사업이며 우리 조국의 미래와 관련되는 중요한 사업”이라며, “응당 자기 사업에 대하여 높은 영예감과 자부심을 가져야”한다고 당부하였다.
김일성 주석은 어린아이일수록 다루기가 더 힘들기 때문에 어머니의 심성과 노숙하고 지식이 풍부하고 경험이 많은 우수한 교사들을 우선 선발하여 보육원, 교양원에 배치하여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존경과 물질적 대우를 함께 높이도록 방침화하였다.
이 방침은 그대로 <법>에 담겨졌다.
<법>제41조 보육원, 교양원은 어린이들을 혁명위업의 믿음직한 계승자로, 주체형의 새 세대로 키우는 영예로운 혁명가이다. 조국의 미래인 어린이들을 키우는 중요하고 보람찬 혁명임무를 수행하는 보육원, 교양원은 인민의 높은 존경과 신임을 받는다. 국가는 사회적으로 보육원, 교양원을 사랑하고 적극 도와주어 그들이 어린이를 잘 키우고 가르치는데 모든 정력을 다 바치도록 깊은 관심을 돌린다. 국가는 어린이보육교양사업에서 공로를 세운 일군에게 훈장과 메달, 명예칭호 수여를 비롯한 배려를 돌린다.
여리고 병치레가 잦은 어린이에게 의료문제는 생사를 결정할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1953년부터 전반적 무상치료제를 실시하고 있는 이북이지만, 어린이를 위한 보다 특별한 배려를 역시 <법>에 담고 있다.
제23조 … 방안의 온도와 습도를 알맞게 보장하며 공기, 해빛, 물과 의료기구, 체육기재에 의한 몸단련을 나이와 체질에 맞게 정상적으로 시켜야 한다.
법에는 “탁아소와 유치원마다 의료일군을 배치하고… 전문의료기관을 통하여 어린이들의 병을 제때에 예방치료한다.”(제25조), “…녀성들의 사회적 활동을 적극 보장하기 위하여 탁아소가 있는 모든 곳에 아동병동을 둔다…”(제26조), “국가는 온천과 약수터, 바다가, 경치 좋은 곳에 어린이들을 위한 료양시설을 잘 꾸려 그들의 건강을 증진시킨다.”(제27조)고 명문화하였다.
어린이를 국가와 사회가 보호하고 책임진다는 것은 곧 어린이를 가진 어머니를 온 나라가 특별히 배려하는 것과 같다는 방침을, 이북 사회는 견지하고 있다. 그 내용 역시 <법>에 담고 있다.
법에는, 임산부에게 “체계적인 의료봉사와 해산방조를 무료로 주며 산후의 건강을 보호”하고 “어린이를 가진 어머니들에게는 로동시간안에 젖먹이는 시간을 보장한다.”(제20조), 세쌍둥이 이상이 태어났을 경우 “… 학교에 갈 나이에 이르기까지 양육보조금을 주며 어린이와 어머니에게 의료일군을 따로 담당시켜 그들의 건강을 책임적으로 돌보아 준다.”(제21조)고 분명히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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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어린이는 나라의 왕’ 이라는 사상과 그 정책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 정책은 일관되게 상승적으로, 양질적으로 강화발전되면서 75년간 구현되어 왔다. 그 결과물을 보고 세계인들은 경탄하고 부러워하였다. 남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잘 살아서 이뤄진 것이 아니다. 아니 정 반대라고 할 수 있다. 악독한 일제가 정신적, 물질적으로 다 망가뜨린 식민잔재 위에서 시작하였고, 전쟁의 폐허물에서 다시 시작하였고, 미국·일본 등 서방제국주의세력의 온갖 봉쇄와 침략 위협 속에서 이뤄내었다. 그래서 북이 이룬 모든 성과물의 속심에는 항일대전의 빨치산 정신, 백두의 칼바람 정신이 녹아 있다. “그 어려운 때에도 이겼는데, 이쯤이야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배짱과 신심이 있다.
‘어린이는 나라의 왕’이라는 사상과 정책, 그리고 실천은 오직 ‘온 사회가 하나의 대가정’을 이루고 있는 집단주의 사회에서만 가능하다. 집단을 대표하고 영도하는 최고지도자가 자신의 친자식처럼 온 나라의 어린이들을 품에 안고 함께 울고 웃고 보듬고 키워야 한다. 그런 지도자를 온 나라의 인민들이 충심으로 지지하고 함께 떨쳐나서는 사회, 그게 이북 사회의 팩트이다.
어린이를 부모의 소유물처럼 여기는 가부장적인 봉건의식이 용인되는 사회는 말할 것도 없고, 어린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자율적인 존재’로 치부하나 결국은 어린이의 보육과 교양을 부모들에게 책임지우는 개인주의 사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결코 ‘어린이는 왕’일 수 없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실례가, 1991년에 제정되고 여러 차례 개정된 한국의 <영유아 보육법>이다. 이 법에는 특히 어린이집에서 아동학대가 잦아지면서 사회여론에 밀려 아동학대 방지 조항이 곳곳에 조문화되었다. 그리고 법 곳곳에 ‘… 하여야 한다’라는 강제조항이 아니라, ‘노력하여야 한다’라는 사실상 책임회피조항이 곳곳에 드러난다. 이 땅의 어린이들을 생각하면 참으로 속 터질 일이다.
제15조의4(폐쇄회로 텔레비전의 설치 등) ① 어린이집을 설치ㆍ운영하는 자는 아동학대 방지 등 영유아의 안전과 어린이집의 보안을 위하여… 폐쇄회로 텔레비전을 설치ㆍ관리하여야 한다.
제18조의2(보육교직원의 책무) ① 보육교직원은 영유아를 보육함에 있어 영유아에게 신체적 고통이나 고성ㆍ폭언 등의 정신적 고통을 가하여서는 아니 된다. <개정 2017. 3. 14.>
제4조(책임) ②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보호자와 더불어 영유아를 건전하게 보육할 책임을 지며, 이에 필요한 재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개정 2013. 1. 23.>….
④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보육교직원의 양성 및 근로여건 개선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신설 2015.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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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주석의 어린이 사랑에 대한 전설 같은 일화는 차고 넘친다.
1946년 처음으로 생긴 탁아소에 어린이가 넘어져서 다치지 않도록 당중앙위원회에 깔았던 융단을 거두어 보낸 일이며, 1947년 길가 아이들의 “사탕을 먹지 않아도 공부하는 것이 제일 기쁘다”는 말에, “해방되었어도 사탕 한알 제대로 먹이지 못하고 있다”며 항일투사들이 마련한 소박한 생일상을 물리친 일화며, 1951년 전쟁 중에 네 살짜리 고아를 최고사령부 작전대 곁에서 키운 사연이며, 1956년 현지지도에서 탁아소보다 사무실을 더 잘 꾸려놓은 것을 질책하며 사무실을 임시탁아소로 쓰고 새로 탁아소를 건설하게 조치를 취한 일이며, 1974년 병원에 입원한 동생을 만나기 위해 눈보라치는 길을 걷던 소녀에게 자신의 차를 내어주며 손수 차문을 열어준 일화며…
김일성 주석은 <회고록>에서, “누가 나에게 당신의 생활에서는 어떤 때가 제일 기쁘고 행복한 때로 되고 있는가고 묻는다면”, “….그것은 인민들속에 들어가는 때이며… 그리고 우리가 나라의 꽃봉오리라고 부르는 아이들속에 있는 때이다.”라고 자문자답하면서 “후대들이 없이야 우리 생활에 무슨 낙이 있겠는가.”고 하면서, “80고령이 된… 지금도 후대들을 아끼고 돌보는데서 최대의 보람과 행복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서 “우리가 연필문제를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첫째 의정으로 상정한 것이나 매 해 설명절을 아이들과 함께 즐기고 있는 것도 다 이런 후대관의 표현인 것이다. 후대들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그들의 교육 교양을 담당한 교원들에 대한 존중과 사랑에서도 표현되고 있다.”라고 뜻 깊게 회고하였다.
▲ 남포육아원과 애육원 [사진= 조선신보 로금순 기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어린이는 나라의 왕’이라는 사상과 정책을 더욱 심화 발전시키고, 그 실현에 정말 온몸을 다 바쳤다.
“어린이를 위한 사업은 제일 중대사”라며 “우리는 후대를 위하여 혁명을 합니다”라고 천명하였다.
김정일 위원장은 조국의 미래를 떠메고 나갈 후대들이 태어나는 것을 제일 큰 경사로 여기고, 훗날 애기궁전으로 불리운 평양산원 건설을 발기하고 완공에 이르기까지 열과 성을 다했다. 당시의 경제 형편상 어려움이 많았으나, “우리들은 지금까지 아이들을 위한 일에 돈을 아껴 본 적이 없습니다. 필요한 것을 다 갖춘 뒤 돈을 계산해도 됩니다.”라고 하면서 최상으로 건설하도록 하였다. 1985년 2월 김 위원장의 탄생 43돌을 맞으며 인민들이 올린 지성어린 산꿀과 웅담을, “산모들이 건강해야 아이들이 건강하고 아이들이 건강해야 조국의 미래가 양양하다”며 모두 평양산원에 보내도록 하였다.
세쌍둥이들을 위하여 비행기가 뜨고 그들이 커서도 일생동안 기념이 될 선물도 마련되는 전설 아닌 전설도 펼쳐졌다.
김정일 위원장의 뜨거운 후대사랑으로, 수도 중심부에 아이들의 놀이터가 훌륭히 꾸려지게 되었으며, 외진 섬마을이라 할지라도 한 명의 학생이 있다면 그곳에 학교가 서고 교원이 찾아가며 나라의 산골마을의 몇 명 아이들을 위한 통학열차, 통학버스가 생겨나고 사랑의 다리도 세워졌다.
‘사랑의 다리’는 1973년 12월 어느 날 작은 마을 냇가의 눈 덮인 돌다리를 건너는 소학교 학생을 걱정한 김 위원장의 발기로 만들어진 다리이다. 당시 김 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여라문 명이 아니라 한 두 명이라도 다리를 놓아줍시다. 나라의 귀중한 보배들을 어떻게 머리수로만 헤아려 보겠습니까. 빨리 아이들에게 넓고 환한 다리를 놓아주도록 합시다.“
‘자매섬의 새 전설’은 지금도 널리 알려져 있다. 1975년 가을 등대원들의 생활형편을 살펴보다가 등대지기 자녀들인 세 어린이가 육지로 나와 소학교에 다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김 위원장은 일꾼에게 어린아이들이 어머니를 그리워하지 않겠는가 하면서, “자매섬에 학교를 세워줍시다. 나어린 학생들이 집을 떠나 공부하게 해서야 우리 마음이 편하겠습니까. 꼭 지어주도록 합시다.”라며 망설이는 일군을 설득하여 세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세우고 교원을 파견하였다. 교재와 학용품 등 학습을 보장하기 위해 해군함정과 헬기까지 보내고, 비록 한명의 졸업생이라고 해도 그가 섭섭해하지 않도록 큰 학교의 졸업식처럼 성대하게 치르도록 조치를 취하였다. 그 첫 졸업식이 방송에 나가면서 자매섬은 삽시에 온 나라에 유명한 섬으로 알려졌다.
고난의 행군, 강행군을 하는 그 어려운 시기에도 김정일 위원장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아이들이 있었다.
“우리들은 어떻게 하나 아이들에게 콩우유만은 떨구지 말고 정상적으로 먹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시절 탁아소와 유치원, 소학교와 중학교들로 달리는 콩우유차는 단 하루도 멎지 않았다. 학생들의 학습은 물론 과외활동, 답사와 견학, 야영생활 비용도 모두 국가가 부담하는 시책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 사회주의조국에서는 부모 잃은 아이는 있어도 고아는 절대로 있을 수 없다”는 신조를 지닌 김정일 위원장은 열사의 유자녀들은 물론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 모두의 친아버지가 되었다. 나라의 어린이들은 그래서 김정일 위원장을 이렇게 불렀다. ‘우리 아버지!’
전선시찰의 강행군길에서 만난 야영가는 아이들… 웃고 떠들며 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에서 힘을 얻은 김정일 위원장은 “아이들은 놀라고 하고 우리는 전선길로 갑시다”라고 웃으며 일행에게 말하였다. 지금도 북의 소년들이 즐겨부르는 <장군님과 아이들>의 ‘장군님은 전선으로 아이들은 야영소로’라는 노래구절은 북의 아이들과 인민들의 가슴을 후덥게 만든다.
“미래를 사랑하라!”, “… 오늘의 조국은 후대들에 의해 더욱 아름답고 훌륭하게 건설되게 될 것이며 따라서 조국의 미래를 위하여 후대들을 더 잘 가꾸고 돌보아주어야 한다.”
“다른 사업에서는 우리가 다 하지 못한 것이 있어도 후대들이 보충할 수 있지만, 후대들을 키우는 사업을 잘 하지 못하면 그것은 누가 보충할 수도 없고 돌이킬 수도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한평생 고수한 후대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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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습 중인 북녁 아이들 [사진= 조선중앙통신]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절절하게 말했다.
“우리는 대원수님들의 뜨거운 후대사랑, 미래사랑을 정히 받들어 대원수님들께서 그처럼 아끼고 사랑하시던 아이들을 잘 키워야 하며 그들에게 세상의 모든 행복을 다 안겨주어야 합니다.”
김정은 시대에 이르러 ‘어린이는 나라의 왕’이라는 사상과 정책, 그 실현은 절정에 이르고 있다. 그래서 김정은 위원장을 ‘후대사랑의 최고화신’이라고 북의 인민들은 칭송하고 있다.
북의 최고지도자로 집무한 초인 2012년 6.6절 대회 축하연설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이렇게 소년단원들에게 약속했다.
“우리 당은 동무들에게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사회주의강성국가를 만들어 넘겨주려고 합니다. 동무들이 주인이 될 앞날의 강성조선은 집집마다에 행복의 웃음이 넘쳐나고 모두가 화목하며 세상에서 제일 강한 나라일 것입니다…. 새 세대들을 위한 사업을 당과 국가의 제일중대사로 내세울것이며 사랑스러운 우리 소년단원들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훌륭한 선군조선의 역군으로 자라나도록 하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높아야 온 나라가 밝아진다.”
김정은 위원장의 이 명언은 현재 조선노동당의 후대관으로 되어 있다. 조선의 아이들을 밝고 명랑하게, 행복에 겨워 <세상에 부럼없어라> 노래소리가 온 나라에 울려 퍼지게 하자는 뜻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위해, 2012년 평양 릉라인민유원지를 세계적 수준으로 건설하기 위해 3번이나 현장을 찾아갔으며, 2013년 27개의 미끄럼틀 등 세계적 수준의 평양 문수물놀이장 건설을 위해 7번이나 현지지도에 나섰으고, 미림승마구락부, 마식령스키장… 등 건설을 위해 낮과 밤을 이어 뛰고 또 뛰었다.
<로동신문>은 아이들의 웃음소리 높은 북 사회를 이렇게 썼다.
“ <민들레>학습장을 넣은 <소나무>책가방을 메고 사랑어린 콩우유를 먹으며 전반적 12년제 의무교육의 혜택 속에서 배움의 나래를 활짝 펼쳐가고있는 행복동이들이 우리 아이들이다. 세상에 둘도 없는 아이들의 호텔, 아이들의 궁전이 보란듯이 일떠서고 부모없는 원아들을 위한 사랑의 요람이 훌륭하게 꾸려져 가는 곳마다에서 아이들의 웃음꽃이 만발하고 있다.”
북 최고지도자들의 부모 없는 아이들에 대한 사랑은 세상에 유례가 없다.
김정은 위원장은 평양의 가장 명당자리에 육아원(유치원 취학 전 어린이), 애육원(유치원 나이의 어린이)을 궁전처럼 지었고, 함흥, 사리원, 원산 등 전국 각지에 부모 없는 아이들의 보금자리를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로 지었고 또 짓고 있는 중이다.
2014년 5월 소문 없이 애육원 원아들이 입원해 있는 대성산종합병원을 찾은 김정은 위원장을 마치 아빠가 찾아온 듯, 원아들이 저마다 엎어질 듯 품으로 안겨드는 영상은 참 뭉클하다. 헤어지기 아쉬워 또다시 동동 매여달리는 그들을 달래는 김정은 위원장의 눈가는 젖어있었다. 또 다른 입원실에서는 아장아장 걸어와 품에 안기는 모습은 정말… 애기들의 볼을 쓰다듬으며 “병원에 입원하기 전 애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보면서 가슴이 아팠는데 이제는 한시름이 놓인다”고 말하였다. 아이들은 “원수님, 안아주세요”라며 스스럼없이 매달렸다.
2016년 11월 동해 한 수산사업소를 현지지도한 김정은 위원장은 지배인에게, “부모없는 아이들을 부모있는 아이들보다 더 잘 키우자”고, “우리가 좀 더 고생을 하더라도 부모없는 아이들의 가슴에서 세상에 부럼없어라의 노래가 저절로 흘러나오도록 하자”고 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대신하여, 온 나라 어머니들의 마음을 대신하여 더 많은 물고기를 잡아 원아들에게 공급해주자”고 또다시 당부하였다. 간곡한 당부의 말을 그 어떤 명령이나 과업보다 더 무거운 것으로 지배인은 마음에 새겼다.
평양 애육원을 찾았을 때 원아들에게 곶감을 정상적으로 보장해주어야 한다며, 감이 많이 나는 곳에 주둔하고 있는 인민군부대들에 최고사령관 명령을 하달한 일화며…
일찍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정은 동지는 어린이들과 학생소년들을 특별히 귀여워하고 사랑한다”고, “이것은 그의 숭고한 후대관의 발현이며 그의 천품이기도 하다”고 말하였다.
<로동신문>은 이렇게 썼다.
“신년사를 마치시는 길로 아이들을 찾아가시여 그들의 노래를 들어주시고 사랑의 선물도 안겨 주신 분, 의사흉내를 내는 어린이에게서 <진찰>도 받으시고 좋은 일을 많이 한 어린이의 편지에 빨간별도 그려주시며 다심한 정을 기울이시는 분이 우리 원수님이시다.”
“뜻깊은 경축행사장들에서도 우리 아이들은 그이와 한집안 식솔처럼 함께 앉고 하늘에 황홀경을 펼치는 축포도 그이와 한자리에 서서 바라보았으며 5점꽃을 피우고 좋은 일을 많이 하면 그 자랑을 제일 먼저 편지에 담아 우리 원수님께 아뢰였다.
우리 원수님과 아이들은 바로 이런 뜨거운 혈연의 정을 맺고 산다.”
2017년부터 시작된 학교전 교육 1년을 포함한 전반적 12년제 의무교육제는 김정은 위원장의 후대 사랑, 미래 사랑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 나라사정이 그처럼 어려운 속에서도, 인재강국이자 강성국가를 하루라도 빨리 건설하여 새 세대들에게 가장 행복하고 훌륭한 나라를 물려주자는 어버이 마음이 담겨져 있다. 그래서 교육의 전반 체계와 내용, 교육 조건과 환경을 완전히 혁신하며, 전민 과학기술 인재화 실현을 앞당기는 여러 조치들이 12년제 의무교육제의 내용으로 추진되고 있다.
2017년 새해 정초에 김정은 위원장이 평양가방공장에 올 줄은 그 누구도 몰랐다. 그는 “오늘 우리가 만든 멋있는 배낭식가방을 메고 학교로 오가며 웃고 떠들 아이들의 모습을 그려보며 이 공장에 왔다”며, 올해 자신의 행군길은 우리 아이들을 위한 사업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하였다. 그러면서, “우리에게는 수백만명의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당의 자식복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을 키우는데 억만자루의 품이 든다고 하여도 그것을 고생으로가 아니라 행복으로 생각합니다. …”라고 뜻 깊게 말하였다.
“(나는) 설사 후대들이 걸어갈 길우에 한 몸이 그대로 모래알이 되어 뿌려진대도 더 바랄 것이 없다”
후대를 위한 삶을 살겠다는 김정은 위원장의 신조는 이렇듯 확고하다.
지난 10월 10일 로동당 창건 경축 열병식 연설에서의 이 한 마디는 그래서 참 많은 의미를 주고 있다.
“우리 어린이들에게 언제나 푸른 꿈이 펼쳐지기를 바랍니다.”
현재의 남과 북 모든 어린이는 100% 통일세대이다. 통일된 조국을 짊어지고 세계적인 강국을 건설해 나갈 남녘의 어린이도, 행복한 웃음 속에서 언제나 푸른 꿈을 키우고 펼쳐갔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출처 : 민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