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그림에는 풍자, 비판이 없다

김홍도 그림으로 추정하는 풍속화. 선비가 생계를 위해 자리짜기를 하고 있다. 부인은 길쌈을 하고 아이는 책을 읽는다. 현재 우리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것이 풍속화의 진짜 묘미이다.

 

[우리그림 감상법]-우리그림에는 풍자, 비판이 없다.

아직도 김홍도의 풍속화 몇 점을 두고 풍자(諷刺), 비판(批判)의 내용을 담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물론 풍자나 비난의 대상은 당시 지배계층이었던 양반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습관적으로 말한다.
근거나 논리를 대라고 하면 우물 쭈물대고 화를 낸다.

풍자와 비판의 대명사로 알려진 몇 개의 작품이 있다.
김홍도의 풍속화로 알려진 [타작, 빨래터], 신윤복의 [단오], 김득신의 [반상도] 따위가 있다.

[타작]에는 비스듬히 누워 타작을 감독하는 양반과, 이에 대해 화를 내듯 볏단을 내리치는 노비가 그려져 있다.
이를 두고 피지배자인 노비(혹은 머슴)이 지배자인 양반에 대립하고 있으며, 이런 현실을 풍자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를 다른 방향으로도 볼 수 있다.
타작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표정이 밝다. 사실 웃으면서 힘든 일을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럼에도 밝게 표현한 것은 작가가 의도했다는 말이다.
따라서 생뚱맞게 화를 내는 인물을 그리는 것은 분위기에 맞지 않는다. 그냥 힘껏 내리치는 순간의 표정을 그렸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이다.

곰방대를 물고 비스듬이 누워있는 양반의 모습은 무료한 듯이 보인다.
핵심은 왜 이렇게 지루한 타작 감독하는 일에 나왔는가 하는 것이다.

이는 농민을 ‘농자천하대본’이라고 여겼던 조선시대 문화와 연관이 있다.
세종 때, 상소문에는 대략 이런 내용이 적혀 있다.

‘농자천하대본이라고 하면서 정작 양반들은 농민이나 농사일의 현장을 전혀 모르고 있다. 이게 말이 되나. 관료나 양반들이 모범을 보여야 한다.’

이런 연유로 모심기나 타작과 같은 중요한 농사일에는 으레 양반들이 현장에 나가보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농사일을 하는 노비들의 표정이 밝다. 비판적으로 보이지 않게 하려는 작가의 의도이다. 볏단을 내리치는 남자의 얼굴표정이 다른 사람과 다르다. 이를 두고 화낸다고 보는 것은 색안경을 낀 것이다. 그냥 힘을 쓰는 순간 표정을 그렸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실제 김홍도의 [행려풍속도]나 김득신의 [타작]에는 의관을 갖추고 정자세로 앉아 근엄하게 감독하는 양반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결국 이 그림 속의 양반은 관례에 따라 억지로 나와 있는 상황을 그린 것이다.
이것은 계급성에 따른 풍자가 아니다.
‘나오긴 해야 하는데, 재미도 없고 졸리기도 하고…저 늘어진 자세 좀 보소. 이도저도 못하는 얼마나 웃기는 상황인가. 껄껄…’

김홍도가 그렸다고 추정되는(사실 거의 위작) [빨래터]라는 작품에는 빨래하는 아낙들과 이를 훔쳐보는 선비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를 겉으로는 점잖은 척하면서 속으로는 여자나 훔쳐보는 지배계층의 이중성을 풍자한 그림이라고 한다.

사실 이런 장면은 당시 인기가 많았던 풍속화의 소재였다.
표암 강세황은 이와 비슷한 그림을 평하면서 대략 이런 글을 썼다.
‘점잖은 선비가 아녀자나 훔쳐 보다니… 자네도 결국은 사람이구먼. 거, 체면 좀 차리게.’

선비나 양반도 결국은 욕망과 감정을 가진 사람이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욕망을 가졌다고 나쁜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욕망을 조절, 통제하는 것을 더욱 중요하게 여겼다. 선비의 수신과 수양의 목표는 욕망을 완전히 없애 지고지순한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다.

악인들은 자신의 악행을 덮기 위해 가장 많이, 집요하게 사용하는 방법이 바로 물타기 수법이다.
그래서 상대방을 도덕적 흠집이 없는 지고지순한 존재로 만들어 놓고 도덕적 공격을 한다.
선비나 양반은 오랜 공부와 수양을 한 사람이기는 하지만 욕망이 없는 무결점의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내면의 욕망을 정확히 알아야 조절, 통제할 수 있다고 여겼다.

김홍도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이덕무는 자신의 책에서 이런 요지로 썼다.
‘돈 많은 중인이 청빈한 선비를 조롱한다. 겉과 속이 다르다고. 속에서는 온갖 욕망이 부글부글 끓는데 억지 참고 있는 것은 위선이란다. 부자는 좋은 물건이 있으면 마음껏 사고, 맛난 음식을 많이 먹을 것이며, 아름다운 여자를 보면 취할 것이라고 으시댄다. 하지만 욕망을 발산하는 것과 참고 인내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라는 것은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훔쳐보는 내용을 담은 그림에 등장하는 선비나 양반은 대부분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부채로 얼굴을 가리는 행위를 가지고 마치 나를 숨기고 드러난 상대를 훔쳐보는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당시 부채로 얼굴을 가리는 것은 체면과 예의를 차리는 행동이다. 이를 통해 자신의 욕망을 제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김홍도 그림으로 추정하는 풍속화이다.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보는 선비와 달리 소를 탄 가족은 무심히 지나간다. 여기서 부채는 체면과 예의를 차리는 행위로 봐야 한다.

 

길거리에서 부채로 얼굴을 가리면, 마주치는 부녀자는 그냥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지나간다.

비단에 채색하고 병풍으로 마감한 [행려풍속도]에는 부채로 얼굴을 가린 선비가 쳐다보는데도 소를 탄 부부는 전혀 의식하지 않고 지나가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너무나 유명한 신윤복의 [단오]라는 풍속화에는 멱을 감는 여성을 훔쳐보는 젊은 중이 그려져 있다.
이를 두고 불교나 승려의 이중성을 비판하는 사람도 있는데 쓸데없다.
조선시대에서 불교나 승려는 사회적 약자였다. 신윤복의 집안은 화원가문으로, 아버지 신한평과 신윤복은 당시 최고가 아니면 갈 수 없다던 도화서 화원, 자비대령화원을 지냈다. 또한 왕의 어진을 그려 관직생활까지 했다.
이렇게 지배층에 있었던 신윤복이 사회적 약자였던 승려를 풍자, 비난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김득신의 풍속화 중에 [반상도, 노상알현도]라고 알려진 그림이 있다.
이 그림의 제목이 너무 악의적이라 [노상소원도]로 바꾸었다.
양반과 상민의 계급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이 그림에 대한 설명은 그림 밑에 따로 해 두었다.

길거리에서 만난 원님에게 절을 하는 장면이 아니라 민원을 넣고 있는 장면이다. 나는 조선시대에 이렇게 길을 막고 절을 하는 방식을 알지 못한다. 여성의 경우 서서 두 손을 모으고 있는데 이런 예법도 있었나? 김득신은 조선에서 20명이 넘는 화원을 배출한 유명한 회원가문이었다. 이렇게 권력의 주변에 있었던 사람이 양반을 비판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내가 지금까지 공부한 바에 의하면, 풍속화를 비롯한 우리 그림 어디에도 풍자나 비난의 내용을 담고 있는 그림은 보지 못했다.

또한 [풍자와 해학]이라는 말을 함께 붙여 사용하는 것도 못마땅하다.
풍자(諷刺)는 남을 말이나 글, 그림으로 공격하는 것이다. 조롱이나 비웃는 것과 같다.
이에 반해 해학(諧謔)은 조화로운 웃음, 맑은 웃음이다.
(해학은 풍자나 조롱과는 달리 선의의 웃음을 유발하는 것으로 인간에 대한 동정과 이해, 긍정적 시선을 전제로 한다.-문학비평용어사전)

그러니까 풍자이면서 해학인 경우는 없다는 말이다.
풍자는 조롱, 비웃음과 연결되어야 한다.
해학과 결합하는 말은 익살이다.

해학(諧謔)이나 익살을 담은 [타작], [서당], [빨래터], [취중송사], [우물가], 신윤복의 [유곽쟁웅], [단오], 김득신의 [야묘도추도] 따위가 있다.
이는 정조가 자비대령화원 녹취재 시험문제에 ‘껄껄거리며 웃을 수 있는 그림을 그려오라’고 한데서 연유를 찾을 수 있다.

우리그림에 풍자나 비난의 내용이 없는 본질적인 이유가 있다.
풍자나 비난은 적(敵)에게 하는 것이다.
조선 내부에서 적이란 곧 역적이고 반역이므로 결코 용납되지 않았다.

조선시대는 성리학이라는 단일한 정치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서인, 남인, 북인, 동인 따위 당파는 모두 성리학을 신봉했다. 단지 정치적 사안이나 철학적 해석에 차이에 의해 대립하거나 분리되었을 뿐이다.
또한 사대부들의 정치적 입장 차이에 의한 당파를 형성하고 대립했더라도, 이를 통합하는 강력한 왕이 존재했다.

풍자나 비난은 없었지만 내부 비판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사간원, 사헌부, 홍문관이라는 사정기관은 고위공직자를 교차 검열했고, 문제가 있으면 목숨을 걸고 탄핵했다.
또한 상소(上訴)라는 방식을 통해 지방 곳곳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해결을 모색했다.

김홍도가 그려다고 추정하는 풍속화. [무동]이라는 제목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풍속화는 국가미술사업의 일환으로 창작되었다. 이게 말처럼 그리기가 쉽지 않다. 전국을 돌면서 자료조사를 해야 하고, 수많은 습작을 그리고 선별해야 하고, 최종적으로는 비단에 그려 병풍으로 남겨야 하기에 돈과 시간, 능력이 요구된다. 이런 일을 가뜩이나 바쁜 공무에 시달리는 화원이 개인적인 창작욕에 의해 그렸다고 생각하는 것은 미술창작의 현실을 1도 모르는 것이다.

 

중인(中人)은 계급이 아니라 계층인이다.
양반, 사대부, 중인, 농(어)민, 상민 따위는 모두 양민일 뿐이다.
중인은 6품 이하의 전문관리직을 지칭한다.
이를테면, 역관(譯官), 의관(醫官), 산관(算官), 율관(律官), 음양관(陰陽官), 사자관(寫字官), 화원(畫員), 역관(曆官) 등 기술관(技術官)과 향리(鄕吏), 서리(胥吏), 서얼(庶蘖), 토관(土官), 장교(將校), 역리(驛吏), 우리(郵吏), 목자(牧子) 등 행정 실무자를 총칭하는 개념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중인 [中人]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어디에서는 중인이 세습된다고 하지만, 거짓말이다.
중인은 과거시험(잡과)를 통해 공식적으로 선발된다.

김홍도나 신윤복, 김득신 같은 화원도 대표적인 중인이다.
이들은 하급관료로 도화서, 자비대령화원이라는 정부조직에 있었다. 따라서 정치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정부조직에 속해있으면서, 양반과 같은 고위관리와 교류를 했던 화원이 양반을 적으로 삼아 풍자와 비난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풍자와 비난을 하려면 독자적인 사상과 정치세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대립해야 한다.
당시 중인은 여항문화라는 이름으로 조직되어 활동했지만, 내면에는 언제나 선비들이 고문이나 자문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중인조직이 양반과 대적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

김홍도나 신윤복이 풍속화를 그린 것은 적에 대항하여 풍자하고 비난하는 사상전을 펼친 것이 아니다.
풍속화는 백성들의 진솔한 삶을 이해하려는 정부의 의지가 담긴 도화서의 국가사업이었다.

신윤복의 풍속화이다. [상춘야흥賞春野興 _무르익은 봄날의 들판에서 여흥을 즐기다.] 이 그림은 꽃놀이 장면이다. 관기를 동원한 것으로 보아 개인적인 놀이는 아니다. 아마도 귀한 손님이 찾아와 마련한 자리일 것이다.. 대금과 가야금을 연주하는 사람도 선비이다. 연주가 끝나면 관기가 노래를 하거나 춤을 출 것이다. 그야말로 소박한 풍류를 즐기는 것이다.

조선은 성리학이라고 하는 철학으로 나라를 건국하고 520여 년을 발전시켰다.
조선의 보물은 금은보화가 아니다.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기록물과 철학적 사유와 실천의 경험이다.
무엇보다 미술의 발전이 두드러진다.
자기수양을 목적으로 한 문인화,
지조와 절개, 양심, 풍류, 유유자적이라는 희생과 헌신의 내용을 담은 수묵담채화,
민본정치, 태평성대의 내용을 담은 궁중회화,
백성들의 삶을 표현한 속화(민화)는 세계미술사에 길이 남을 예술적 성취라고 생각한다.

글 심규섭

김홍도-[행려풍속도]에서 나물을 캐는 아낙들을 쳐다보는 모습을 그렸다. 길을 가면서 사람을 쳐다보는 일은 특별나지 않고 흔한 일이다. 그럼에도 부채로 얼굴을 가렸다. 예의를 차리고 있는 것이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