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잿더미 된 평양이 3년 만에 어떻게?

(2) 조선로동당 제3차대회-천리마운동과 청산리방법
[기획연재] 조선로동당 대회

조선로동당의 당대회는 우리의 총선과 대선을 합친 것에 비교된다. 총선과 대선을 거치면서 국정을 평가하고 새로운 계획을 수립한다는 점도 그렇지만 전 국민적 참여와 의사가 집중된다는 것도 같다. 때문에 조선로동당 대회를 알아야 북(조선)이 제대로 보인다. [민플 편집자]

(1) 창당과 제2차대회 – 북조선공산당과 조선로동당
(2) 제3차대회 – 천리마운동과 청산리방법
(3) 제4차대회 – 대안의 사업체계와 경제·국방 병진 노선
(4) 제5차대회 – 사상·기술·문화 혁명과 주체사상
(5) 제6차대회 –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와 후계자 승계
(6) 당대회가 없던 36년 – 북미 핵공방과 선군정치
(7) 제7차대회 – 일심단결, 정면돌파, 자력갱생
(8) ‘80일 전투’와 제8차대회


▲폭격으로 잿더미가 된 평양, 전후 복구 사업
1953년 정전협정문에 조인한 미국은 100년이 지나도 북한(조선)은 다시 일어서지 못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이 38선 이북 지역에 쏟아부은 포탄 수가 2차 세계대전 때와 맞먹는 양이었으니 북한(조선) 전역이 잿더미로 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원산은 수치상 3.3㎡당 포 1발이 떨어졌다. 오죽했으면 ‘원산폭격’이라는 군대식 기압이 생겼을까.

전후 경제복구

공장은 물론이고 모든 건물과 집까지 잿더미로 변한 조건에서 조선로동당은 ‘모든 것을 전후 인민경제 복구발전을 위하여’(1953년 8월 중앙위원회 제6차 전원회의 보고)라는 구호를 제시하고, 불과 3년 만에 기적처럼 다시 일어섰다.

제3차대회가 열린 1956년 공업 총생산액은 1949년에 비해 거의 1.5배, 식량 생산은 전쟁 전 수준에 도달했다.

조선로동당은 중공업의 선차적 복구발전을 보장하면서 경공업과 농업을 동시에 발전시키는 사회주의 경제발전의 새로운 길을 선택했다.

당시 먹고 살기 힘든 시절이다 보니 “기계에서 밥이 나오냐”며 당 정책을 걸고넘어지는 종파분자들의 준동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풍부한 지하자원을 활용한 중공업 우선 정책은 경공업과 농업 발전에도 크게 기여함으로써 그 정당성을 입증했다.

제3차대회와 반종파투쟁


▲조선로동당 제3차대회에서 보고하는 김일성 총비서
1956년 4월 23~29일 열린 조선로동당 제3차대회에는 116만5천여 당원들을 대표하여 결의권을 가진 대표 914명이 참가했다.

제3차대회는 냉전시기 미국 주도의 ‘반공’ 공세가 극심해지고, 소련 흐루쇼프의 ‘수정주의’ 바람이 거세지던 때 열렸다.

제3차대회에선 베트남을 비롯한 아세아에 대한 미국의 침략과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을 반대하는 식민지민족해방투쟁을 적극 지원하는 대외정책을 견지하면서, 인민경제발전 5개년 계획의 새로운 투쟁목표로 제시했다.

무엇보다 대회를 계기로 당 안에서 소련 수정주의와 기회주의를 끌어들이는 종파분자의 사대주의, 교조주의 책동을 차단하는 한편, 이들이 퍼뜨린 관료주의와 형식주의의 낡은 틀을 부숴버렸다.

해방 전에 이미 일제에 투항하고 미제의 고용간첩으로 굴러떨어진 화요파계열의 박헌영을 1952년 숙청한데 이어 1958년 ‘종파유익설’을 퍼뜨리며 종파활동의 자유를 요구하던 최창익 일당의 죄행을 단죄했다.

천리마운동

사회주의건설에서 혁명적대고조의 시초가 된 ‘천리마운동’에 힘입어 제3차대회에서 제시한 인민경제발전 5개년 계획의 목표를 초과달성했다.


▲강선제강소 지도일군 및 모범 노동자들의 협의회를 지도하는 김일성 주석 [1956. 12. 28]

김일성 주석이 직접 강선제강소를 찾아 ‘천리마를 탄 기세로 달리자!’는 구호를 제시하고, “강재를 좀 더 생산하면 나라가 허리를 펴겠다”고 말하자, 강선의 노동계급은 6만 톤 생산 압연기에서 9만 톤을 결심했으며 연말 12만 톤의 강편을 생산하는 기적을 창조했다.

천리마대고조는 공업뿐만 아니라 1958년 농업협동화를 완료한 농촌지역의 식량생산과 수산업 분야에서까지 수많은 천리마작업반이 이름을 떨쳤다.

청산리정신과 사업방법

1960년 2월 평안남도 강서군 청산리에서 15일 동안 현지지도를 한 김일성 주석은 청산리당총회와 강서군당위원회 전원회의를 열고 회의 준비부터 회의 진행방법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가르쳐 주면서 청산리정신과 청산리사업방법을 정식화함으로써 북한(조선)은 사회주의 기초건설을 완수할 수 있었다.

청산리정신이란?

‘인민대중의 이익을 옹호하며 그들의 힘에 의거할 데 대한 조선로동당의 혁명적 군중노선의 기본요구를 구현하고 있는 대중지도사상’

청산리 방법이란?

▲위 기관이 아래 기관을 도와주고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도와주며
▲늘 현지에 내려가 실정을 깊이 알아보고 문제해결의 올바른 방도를 세우며
▲모든 사업에서 정치사업, 사람과의 사업을 앞세우고 대중의 자각적인 열성과 창발성을 동원하여 혁명과업을 수행하는 방법.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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