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그림을 民畵(민화)라며 俗畵(속화)로 만든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民畵(민화)는 民畵(민화)다.
아니다 우리의 얼을 담은 韓畵(한화)다.

민화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일제강점기 일본인 미술평론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1889∼1961]라는 사람이 ‘오오쓰에[大津繪]’라는 일본의 민속적 회화에 民畵(민화)라는 했다.

이를 해방 후 서서히 고착화되어 민화가 우리 그림을 부르는 대표적인 이름으로 자리 잡았다. 야나기 무네요시는 도교제국대학 철학과를 나온 사람으로 사실상 그림이나 공예에 대한 지식이 없다. 특히 조선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조선으로 건너와 당시 널려 있던 도자기와 그림 그리고 공예품에 눈독을 들이고 이를 주워 줍다시피 끌어 모아 1924년 조선미술관을 세우고 이조도자기전람회와 이조미술전람회를 여는 등 조선의 도자기와 그림에 빠졌다. 그리고 [조선과 예술] [茶(차)와 美(미)]등의 책을 쓰기도 했다.

한마디로 당시 조선은 몰락한 나라가 아니라 보물이 흔해 빠진 나라였다. 그래서 먼저 보는 놈이 횡재를 할 정도로 조선 총독에서부터 양아치 짓거리를 하던 놈들까지 조선의 보물을 일본으로 가져가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조금 배운 것들은 서양에서 배운 논문이라는 형식으로 글과 책을 남기며 전문가 행세를 했다. 그 중 대표적인 자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1889∼1961]이다. 이 자는 1913년 조선으로 건너온 아사카와 다쿠미[淺川巧][1891~1931]가 조선에서 가져 간 청화백자를 선물 받고 조선으로 건너와 도자기와 민예품을 수집해 일본으로 반출한 자이다.

그리고 아사카와 다쿠미는 [조선의 소반] [조선 古窯跡(고요적) 조사경과보고] 등을 통해 조선을 샅샅이 뒤지고 다녔다. 그러다 1931년 급성 폐렴으로 금사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산림에 기여한 공이 있는 자로 평가 받고 있을 정도다.

그런가하면 후지시마 가이지로(藤島 亥治郎, 1899. 5. 1 ~ 2002. 7. 15)라는 일본인 건축사라는 자이다. 이 자는 1933년 조선 총독분에서 조선의 보물, 고적, 명성, 천연기념물 보존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한마디로 보존을 일비로 조선을 뒤지는 작업을 한 자이다.

이 자는 도교대학 건축학과를 나온 자인데 [조선건축사론](朝鮮建築史論)을 『건축 잡지』530-536 페이지에 게재(1930)를 했다. 그리고 『한의 건축 문화』(韓の建築文化)라는 책을 남긴 자이다. 이를 서울대 ***교수가 번역서를 내어 놓기도 했다.

그럼에도 경북 의성 관덕동 삼청석탑(보물 제188호)를 찾아가 다음과 같은 글을 건축잡지에 게재했다. “가장 흥미 있다고 말 할 것은 상층기단위의 네 귀퉁이에 놓여 있는 네 개의 석사자이다….. 암사자는 겨드랑이 밑으로 새끼사자를 넣고 젓을 빨게 하였다.”

“암사자를 곁들임은 중국에서도 송대 이상으로 오래된 것을 구하기 힘들며,조선에서는 각 대를 통하여 그 예가 없고 …. 동양에서 兒獅(아사. 새끼사지) 로 最高(최고)의 예가 된다.”라고 했다.

그래서 지금도 石塔(석탑)과 石燈(석등)의 獬廌(해치)를 石獅子(석사자)라 부르는 전례를 남긴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에 불국사 다보탑의 해치도 석사자라 부르고 법주사 석등도 쌍사자석등이라 부르는 등 아직 이 자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조선의 그림을 民畵(민화)라 부른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의 영향력은 일재강점기 이후 학계의 전설로 남을 만큼 대단하다. 그래서 조선 임금의 위의를 드러내는 日月五峰圖(일월오봉도)는 물론 봉황도와 모란도 그리고 김홍도가 그린 금강산과 풍속화 등 모두가 民畵(민화) 즉 俗畵(속화) 취급을 받는다.

그래서 민화를 재대로 헤아리지 못하니 우스갯소리처럼 “民畵(민화)는 民畵(민화)다.”라는 너스레를 떠는 사람들이 전문가 행세를 한다. 일재강점기 무지한 일본인들이 우리의 문화유산을 왜곡된 주장으로 우리의 난도질을 해 놓았다. 이제 우리의 얼이 담겨 있는 문화유산을 우리의 눈으로 들여다 볼 때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민화라는 얼이 빠진 소리로 폄하 할 것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 그림은 누구나 그리는 저작거리의 그림이 아니다. 이제 우리 민족의 정신문화를 담은 그림 韓畵(한화)라고 당당하게 말할 때가 되었다.

전통문화도량 아라사
아리랑문화원 천웅 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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