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 50주년 맞아 대하소설3부작 개정판, 독자와의 대화집 펴내
‘재능 40%, 노력 60%’로 치열하게 달려온 50년 작가인생 술회
일본 죄악 편들고 역사 왜곡하는 자들 징벌법 제정 적극 동참
“작가 후배들이여, 독자들을 위해 더 치열하게 고민하기를”
소설가 조정래(77)가 등단 50주년 기념으로 독자와의 대화를 담은 ‘홀로 쓰고, 함께 살다'(해냄)를 펴내고, 12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났다.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 대하3부작 개정판도 펴냈다. ‘재능 40%, 노력 60%’의 배합으로 치열하게 50년을 달려온 그가 이즈음 생각하는 한국사회와 문학에 대해 듣는 자리였다.
▲조정래 작가가 12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 문학의 거대한 산맥 조정래 작가 등단 50주년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조정래는 이날 “반민특위를 반드시 부활시켜 160만명에 이르는 친일파 전부를 단죄해야 한다”면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나라는 미래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일본의 죄악을 편들고 역사를 왜곡하는 자들을 징벌하는 법을 만드는 운동에 적극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대하3부작 개정판’에 대해서는 “고친 게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은 편인데, 문장들을 고쳐놓고 나니 안심이 된다”면서 “완벽을 향해 가고자 하는 작가의 진지한 노력으로 받아들여주기 바란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그동안 독자들에게 책만 읽어달라고 했을 뿐, 내가 정겹게 해드린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서 “그래서 이번에 허심탄회하고 즐겁고 솔직한 대화의 자리를 마련하기로 한 것”이라고 ‘홀로 쓰고, 함께 살다’의 출간 배경을 설명했다. 이 책에는 독자들 질문 100여 개에 대한 조정래의 응답이 수록돼 있다.
향후 문학 여정에 대해서는 “그동안 사회 역사 속의 갈등과 문제점을 계속 보아왔는데 이제는 그런 상황을 떠나 인간의 본질을 다룬 작품을 3권 정도 써서 2년 후에 펴내고, 3년 후에는 내세에 대한 문제를 불교적 세계관으로 써낼 계획”이라며 “현실은 물론 내세까지 아우르는 걸 써야 작가는 완성된다”고 밝혔다. (관련 기사: [조용호의 문학공간] 조정래 “창작이란, 자신의 심장에 총을 쏘는 일”)
ㅡ’아리랑’의 역사적 사실이 왜곡됐다는 주장도 있다. 소설에서 역사적 충실성은 어느 정도 구현돼야 하는가.
“이영훈(‘반일종족주의’ 저자)이란 사람이 내 책에 대해 욕하는데, 그는 한마디로 말하면 신종 매국노이고 민족 반역자다. 저는 ‘태백산맥’이 500가지가 넘는 부분에서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고발돼 11년간 조사를 받은 끝에 무혐의 판결을 받았다. 그런 만큼 더 철저하게 자료 조사를 해서 ‘아리랑’을 썼다. 제가 쓴 역사적 배경은 국사편찬위와 진보의식을 지닌 이들이 집필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 명확한 것이다. 반민특위는 민족정기와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반드시 부활시켜야 한다. 150~160만 명을 헤아리는 친일파 전부를 반드시 단죄해야 한다. 그것 없이 이 나라의 미래는 없다. 일본의 죄악을 편들고 역사를 왜곡하는 자들을 징벌하는 법을 만드는 운동에 적극 동참하려고 한다. 그것이 ‘아리랑’을 쓴 작가의 사회적 책무다. 그런 자들은 법으로 다스려야 한다.”
ㅡ코로나19시대는 작가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가.
“저는 작가로서 두 가지 문제를 변함없이 생각해왔다. 하나는 인간의 삶에 도움이 되는 작품을 써야한다는 주제의식이고, 또 하나는 지구 환경 문제다. 지금 코로나는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폐기를 미덕으로 삼은 자본주의의 마성이 불러온 재앙이다. 백신이 곧 생산돼 코로나19는 제압되겠지만, 새로운 전염병이 가속도로 우리에게 올 것이다. 우리가 생활태도와 가치관을 바꾸지 않는 한, 인간들의 끝없는 탐욕은 어리석은 역사를 만들 것이다. 이 기회에 사람들이 겸손해지고, 조금씩 불편하고 조금씩 가난해도 자족을 느낄 수 있는 철학적 존재로 변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조정래는 등단 50주년 간담회에서 “일본의 죄악 편들고 역사를 왜곡하는 자들을 징벌하는 법 제정 운동에 적극 참여할 것”이라며 “그것은 ‘아리랑’ 쓴 작가의 사회적 책무”라고 말했다. [문재원 기자]
ㅡ독자들의 질문에 대한 응답 중 각별히 ‘노력’을 강조하는 부분들이 많다. 지나온 50년 작가 인생에서 노력이 지닌 의미와 가치에 대해 부연한다면.
“내 소설이 ‘꼰대’의 것이라는 악플도 있다. 이번 책에도 노력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꼰대의 이미지가 더 생길지 모르지만 일부러 그렇게 썼다. 저는 ‘인생이란 자기 스스로를 말로 삼아 끝없이 채찍질 하며 달려가는 노정’이고, ‘인생이란 두 개의 돌덩이를 바꿔 놓아가며 건너가는 징검다리’라는 두 가지를 푯말 삼아 재능 40프로, 나머지 60프로의 노력으로 50년 동안 살아왔다. 인생은 그런 것이다.”
ㅡ문학의 미래에 대해 어찌 생각하는가.
“소설은 분명히 위기이다. 그러나 스마트폰에게 독자들을 빼앗기기 전에도 소설의 위기는 많았다. 라디오가 나와 드라마로 소설을 만들었을 때, 영화가 나와 소설을 대신할 때, 컬러텔레비전이 나왔을 때 모두 위기를 말했으나 영화는 영화대로 소설은 소설대로 다 살아남았다. 인간은 무한한 다양성을 수용하고 향유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이전에 비해 소설이 안 팔릴 수는 있으나, 문학을 포함한 예술이라는 것은 수용자가 많아서 하는 짓이 아니다. 예술가는 밥 굶을 각오를 한 미친 영혼을 지닌 자들이고, 한 사람을 위해서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존재들이다. 인간의 다양한 수용성을 믿고, 예술가들의 치열한 노력을 믿으면 문학의 미래에 대한 섣부른 예단이 필요하지 않다는 점을 말씀드린다.”
ㅡ’독자와의 대화’에서 1인칭 화자로 장편을 쓰는 후배들을 질타했다. 격려할 점은 없는가.
“인물이 있어야 사건이 만들어지고, 사건은 반드시 상황적 시대적 배경을 필요로 한다. 서로 의지하고 기대는 것이 인간 사회의 삶이고, 소설이 그리는 건 인간사회의 희로애락이다. 그러려면 많은 인물을 그려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1인칭 장편은 ‘나’가 소설에서 빠져버리면 뒤에 인물 100명이 나와도 계속 ‘나’가 있어야만 하는 피동적 존재들로 전락해버린다. 인간의 삶은 능동적이다. 개성적 인물들이 얽혀 부딪치면서 사건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1인칭 소설은 단편은 가능할지 모르나 대여섯 명 이상 나오는 장편은 불가능하다. 그렇게 나온 장편은 불구다. 그러므로 1인칭 소설로 장편을 쓰는 후배들을 격려할 수 없다. 좀 더 치열한 고민을 하시기 바란다. 한국 문단을 위해서가 아니라, 소설을 읽어야 하는 독자들을 위해서.”
조정래는 매년 이 시점이면 어김없이 이어지는 ‘노벨문학상’ 관련 질문에 대해서는 “그 상 타면 좋고 안 타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는 게 작가답지 않은가”라면서 “한가지 분명한 것은 세계적인 상 중에서도 가장 정치적인 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지는 후속 질문에 “일본 소설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때 그의 애제자인 군국주의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가 스웨덴에 가서 20여 차례 파티를 열었다는 뒷이야기가 있다”면서 “우리는 그런 포괄적인 능력이 없다”고 ‘포괄적’으로 답변했다. 그는 “문학의 본질과 상관없는 상에 연연하지 않는 게 좋다”면서 “저를 포함한 모든 작가들이 초연하게 문학을 해나가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U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