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국에 영향을 끼친 고구려의 높은 문화

고구려는 (BC277년~AD668년) 유구한 우리 민족역사에서 가장 강한 나라였다.

한참 전성기에 오늘의 남만주일대로부터 연해주와 일부 코리아반도의 중부까지 넓은 영토를 차지한 고구려는 근 1천년동안 동방의 일대 강국으로 그 위용을 떨쳤으며 주변나라들에 큰 문화적영향을 미쳤다.

일본열도에 높은 철기문화를 전한것도 고구려였다. 6세기에는 고구려를 비롯하여 조선으로부터 많은 승려와 불교 관련 일을 하는 사람(仏工), 절을 건축하는 사람(寺工), 불화를 그리는 사람(画工)들이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의 성인이라 불리는 쇼토쿠태자가 생애의 스승으로 모신 혜자도 고구려의 고승이었다. 법륭사의 금당에 유명한 벽화를 그려 넣고 먹과 종이 만드는 법을 가르친것도 고구려의 승려 담징이었다. 오늘 일본의 오랜 절에서 볼수 있는 1탑3금당배치로 된 건축은 고구려를 비롯한 고대 조선의 사원건축의 전통적인 양식을 본받은것이다.

더욱 사람들을 놀라게 한것은 1972년  나량현 고시군 명일향촌에서 발굴된 고송 총 벽화였다. 고송 총이 고구려고분벽화에 나오는 사신 도나 인물상을 닮은 벽화를 갖고 있다는 사실은 그 당시의 고구려문화의 영향을 실증하는 것이다. 고분벽화에 그려진 여인들의 머리카락, 옷차림, 옷모양은 고구려의 풍속그대로였고 천장에 그린 별들의 자리는 고구려의 천문도에 따르는것이었다. 사람들은 천 수백년의 시간과 공간을 넘어 고구려의 찬란한 문화를 보았다. 고구려의 후계국인 발해도 동해를 통해 오랜 기간 고구려의 문화를 계속 일본에 전하였다.

광개토왕릉비에 대한 해석을 둘러싸고 일본은 역사적인 배경을 완전히 무시하고 마치 백제와 신라를 파하고 지배하에 두었고 아무런 관련유물도 발굴되지 않은 <임나일본부>가 마치도 코리아반도의 일부를 통치해온것처럼 역사를 심히 외곡날조해왔다. 그러나 일본의 고대사회발전은 반대로 고구려를 비롯한 조선의 영향을 떠나 생각할수 없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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