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이음이 발간하는 월간 ‘민족과 통일’ 8월호에 <진보사대주의의 몰역사성>이라는 제목의 글이 발표 되었다.
글은 “책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에 대한 단상”이라고 소제목을 달고,
이 책을 쓴 “김누리 교수를 대표로 하는 일군의 진보세력”을 “진보사대주의로 규정한다. “고 지적하며 “앞에서도 말했듯이 진보사대주의의 가장 큰 특성은 몰역사성”이라고 지적했다.
글은 “한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시대가 올 때마다 우리는 이전 세대의 모든 것을 죄악시하고 새로운 세대는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창업하는 양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며,
“이러한 생각은 보수적이거나 수구적인 사람들보다는 오히려 스스로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속에서 강하게 나타난다.”고 분석하고,
이어서, ” 그러나 그 결과는 역사가 보여주듯이 몰역사적인 사고에 매몰되어서 진보는커녕 오히려 수구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강조하였다.
글은 “개화기 시대를 생각해 보자.”며, “봉건왕조를 타파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사람들이 친일사조에 빠져들었고, 개화기 혹은 해방 전후에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들이 갖고 있는 생각은 숭미주의를 벗어나지 못하였다.”고 짚고,
“또한 당시 영향을 미쳤던 마르크스주의를 교조적으로 받아들여서 소련이나 중국을 추종하는 것이 진보인 양 생각하는 경향도 있었다.”며,
“이러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라고 질문하며 이어서 “바로 몰역사성”이라고 꼭 집어 강조했다.
이어서 글은 “우리는 ‘역사로부터 무엇을 배운다’고 흔히 말한다.”며, “역사의식이라고 하면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어서 미래를 위해 현재 무엇을 할 것인지를 깨닫는 것을 말한다.”고 상기시키며,
“그래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말하는 것”인데, “그런데 역사로부터는 배우는 것만이 아니다. 물려받기도 한다. 바로 역사의 유산인데, 그것이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의 조건이 되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어서 글은 “요즘 김누리 교수의 책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가 화제”라며, “우리 사회의 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우리보다 어떤 면에서는 앞선 사회인 독일 사회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을 소개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글쓴이는 김 교수가 우리 사회의 문제를 지적하는 내용에 대해서 다소 과장되고 단정적인 면이 있지만 대부분 공감한다.”면서,
“독일 사회의 장점을 소개한 것에 대해서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물론 이 부분은 사실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독일에서 공부하고 온 진보적인 학자들이 그 내용의 대부분을 이미 우리 사회에 소개하였다. 그러나 그것을 김 교수처럼 대중적인 언어로 설득력 있게 이야기한 사람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고 인정하면서 “하지만 김 교수가 역설하는 내용의 전제에는 심각한 오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문제를 제기 했다.
글은 “우선 김 교수가 우리 사회의 문제를 이야기하기 위한 비교 대상으로 독일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 교수는 ‘요술 거울’이라는 비유를 통해 우리가 우리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해서도 이러한 비교 대상이 필요하다고 한다. 일면 타당하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참고 대상이지 우리가 가진 문제의 본질을 알게 해준다거나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는 것은 아니다.”라며,
“앞에서도 말했듯이 우리는 자신의 과거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교훈을 얻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고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조건을 알게 되는 것이다. 앞사람으로부터 물려받은 자신의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다른 존재와 비교할 때 우리는 좌절감에 빠지거나 자신의 이상에만 매몰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고 짚었다.
이어 글은 “김 교수는 왜 우리나라와 독일을 비교 대상으로 삼는가? 현대사의 궤적이 가장 유사하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과 분단의 운명을 공유했다는 것이다. 국가의 규모도 엇비슷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독일은 현대사의 궤적이 전혀 비슷하지 않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바이마르 공화국을 통해 민주주의가 만개되었던 경험이 있는 나라이다. 그리고 전 세계의 선진 제국주의와 인류 최초 사회주의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킬 정도로 국력이 막강한 나라였다. 그리하여 전범국가의 책임을 지고 분단이 된 나라이다.”라고 두나라가 처해진 전혀 같지 않는 모습을 강조 했다.
이어서 글은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일부 선각자들을 제외하고는 민주주의에 대해 알지도 못한 상태에서 식민지가 되었고, 해방이 되자마자 또 다른 외세에 강점되고 분단되었으며, 세계대전을 방불케 하는 전쟁의 참화를 겪고 분단이 고착화된 나라이다. 현대사의 궤적이 유사하다고 볼 수 있는가?
이러한 잘못된 대전제는 또 다른 잘못된 소전제를 낳는다. 우리 현대사의 민주주의 역사가 그 이면으로 보면 군사 쿠데타의 역사이기도 하다고 보는 것이다. 김 교수는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으로 이어져온 한국 민주주의가 위대한 민주주의의 역사라고 하면서도 동시에 군사독재의 야만 속으로 다시 굴러 떨어졌다고 한다. 김 교수는 우리 현대사의 민주주의 역사를 추락의 반복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은 우리의 역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다. 4.19혁명이 5.16군사쿠데타로 좌절되고, 5.18민주화운동이 폭력적 진압으로 끝나고, 6.10민주항쟁이 양김의 분열에 따른 반사이익으로 군사독재를 연장시키는 것으로 귀결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곧 제3세계의 나라들에서 보는 ‘반복’은 아니었다. 그것은 군사독재를 해체시키는 과정이었고, 비록 불철저하고 부족하다 할지라도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를 위한 토대를 만들게 한 것이다.
4.19혁명이 없었으면, 5.18민주화운동이 없었고, 5.18민주화운동의 무장항쟁이 없었으면 6.10항쟁은 무력으로 진압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촛불혁명의 평화적인 시위는 가능하지 않았으리라. 그 점을 이해하지 못하면 ‘실패와 반복’으로만 볼 수밖에 없다.
현대사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우리의 현재 문제의 근원을 ‘6.8혁명’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낳게 만든다. 김 교수는 ‘한국만 예외적으로 6.8혁명이 없었다’고 한다. 그가 6.8혁명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책에서 언급하고 있지만, 그것은 서구에서 미국, 일본으로 번져 갔고, 동구에 전파되었는지는 몰라도 여타 제3세계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이었다. 한국만 예외적으로 없었다고 하는 것은 김 교수의 서구 중심의 세계관을 보여 주는 것이다.
1968년의 한국이 어떠한 상황이었는지는 김 교수도 언급하고 있고, 그것은 대체로 맞는다고 볼 수 있다. 당시 한국은 남북 대결이 고조되고 군사독재가 점점 더 강화되어 가면서 공공연하게 폭력을 행사하여 민주화운동을 탄압하던 시기였다. 김 교수가 말하는 6.8혁명의 문화혁명 등은 꿈도 꿀 수 없는 시기였다. 이러한 상황을 잘 아는 김 교수가 그것이 없어서 오늘의 사회가 되었다는 말을 하는 까닭이 무엇일까?
이러한 잘못된 전제는 잘못된 결론을 이끌어 낸다. 통일에 대해 언급하면서 김누리 교수는 독일의 경우 동독의 민주화가 선행되었다고 강조한다. 은연중에 그는 북과 동독을 동일시하고, 남과 서독을 동일시하고 있다. 현대사의 궤적이 다르듯이 그러한 비교는 어불성설이다. 동독은 그 나름대로 사회주의를 이루었다고는 하지만 소련의 위성국가라는 성격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반면에 북은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지닌 미국의 집요한 압박에도 굴하지 않으면서 중국과 소련 두 사회주의 강대국에 예속되지 않고 자기 정체성을 지켜왔다.
서독은 미국과 서유럽의 막강한 지원 아래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그 토대 속에서 나치에 대한 청산을 이룰 수 있었다. 우리는 어떠한가? 미 군정에 의해 일제의 폭력기구와 관료집단이 그대로 온존된 상태에서 독재와 군사독재가 일제청산을 가로막았다. 그것을 우리 민중들은 투쟁을 통해 돌파해 온 것이다. 자랑스러운 우리의 역사를 서독 따위와 비교하며 자학을 하는 것은 이미 사대주의에 눈먼 상태에서만 나올 수 있는 생각이다.”라고 글을 맺었다.
이 글을 지면에 소개한 자주시보는 ” 김누리 교수를 대표로 하는 일군의 진보세력을 진보사대주의로 규정한다. 글에 의하면 진보사대주의의 가장 큰 특성은 몰역사성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역사적 조건을 무시하고, 그에 대한 이해 없이 우리의 열등한 점만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들에게 보이는 것은 오로지 이른바 선진국의 발전한 부분일 뿐이다. 최근에 이러한 생각이 아무런 비판 없이 많은 진보세력에 받아들여지고 그것이 마치 바이블인 양 발언하고 다니는 것을 글은 개탄한다. 글을 통하여 민족주체성을 갖춘 독자들의 분투를 기대한다.”고 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