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붓에 그려내는 몰골법으로 명망높은 미술가 최성룡씨 78세 현역, 후비육성에 심혈

북의 화가 최성룡화백은 몰골화의 권위자로 유명하다.
몰골법이란 육곽선을 그리지 않고 단붓에 묘사대상의 형태와 색갈들을 그려내는 기법을 말한다.
3살에 그림을 시작한 최성룡화백은 몰골화로 국내외에 이름을 날렸을뿐아니라 후대육성에도 이바지하였다.
최화백은 1942년 평안북도의 비단섬주변의 한 농촌마을에서 나서 자랐다.
태어나서 닷새만에 어머니를 여의고 할아버지 손에서 자라난 최화백은 3살부터 혼자서 개, 닭, 참새 등 동물들을 보기만 하면 땅우에 그림을 그려내곤 하여 마을에서 미술신동으로 불리웠다.
1950년대 말에 평양미술대학에 처음으로 조선화과(당시)가 나왔을때 최화백이 첫 입학생이 되었다.
최화백은 “미술가가 되고싶었던 어린시절의 꿈과 함께 나라의 훌륭한 미술가가 되라고 하던 할아버지를 비롯한 고향사람들의 기대를 안고 대학교문에 들어섰다.”고 추억한다.
졸업작품으로 조선화 “최고사령관동지께 드리는 맹세문”을 형상하여 내놓았는데 당시 조선화로는 풍경화밖에 그리지 못한다던 종래의 고루한 편견을 뒤집고 조선화로 인물화를 형상하여 화단에 파문을 일으켰다.
1966년 대학을 졸업하고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에서 조선화화가로 창작생활의 첫 걸음을 뗀 최성룡씨는 김일성주석님을 형상한 국보적인 미술작품들을 수많이 창작하여 조선화화단에서 높은 창작적권위를 가진 존재로 올라섰다.
그는 창작생활기간 모든 그림을 몰골법으로 그렸다.
윤곽선을 그리지 않고 단붓에 그려내는 몰골법의 특성상 묘사대상에 대한 완전한 파악에 기초하여야만 성공할수 있다.
때문에 최성룡씨는 창작실이 아니라 늘 농촌과 탄광 등 현장에 나가 생활하면서 착상을 하고 창작도 하였다.
조선화 <새 탄전의 아침>
그의 대표작인 <새 탄전의 아침>도 1980년대 안주탄광(당시) 막장에 내려가 탄부들과 일하다가 새 탄밭을 찾고 너무 기뻐 탄을 뿌리며 좋아하는 그들과 기쁨을 함께 나누며 그 자리에서 창작한 것이다.
최화백은 몰골화법으로 그린 <달밤의 기러기>로도 유명하다.
그는 “<어린시절을 비단섬주변에서 보냈는데 거기에 기러기가 많았다.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기러기들이 밤새 자지 않고 소리를 지르며 날아다니는데 마을사람들이 모두 마당에 멍석을 펴고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기러기와 함께 밤을 새곤 하였다. 그때 달밤의 기러기들이 나는 모습이 지금도 기억속에 생생히 남아있었다. 그것을 그림으로 담았다.”고 회고했다.
또한 김정일국방위원장은 “형상초안을 보아주시고 정말 구도가 좋다고, 한번 잘 그려보라고 하시며 지도까지 하여주시고 완성되었을 때엔 높은 기교를 가지고 정서적으로 잘 형상한 명작이라고 높이 평가해주시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그날부터 조선화의 몰골화법을 계승발전시키고 세계에 빛내는데 한생을 다 바칠 맹세를 다졌다고 한다.
조선화<달밤의 기러기>들중의 한 작품
조선화 <달밤의 기러기>는 인기가 높아 창작생활기간 여러 편이 창작되었다.
첫 작품은 수예로 수놓아져 조선미술박물관에 소장되어있다.
최화백은 1978년부터 1994년까지 평양미술대학 조선화강좌 강좌장으로 사업하면서 몰골화과를 새로 창설하고 수많은 후비들을 키워내 몰골화의 전통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데 공헌하였다.
5살에 타이,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 여러 나라들에 초청되어 세계에 이름을 날린 오은별의 스승도 바로 최성룡화백이다.
농촌에서 나서 자란 최화백은 창작생활기간 농촌이나 산골의 향토적인 정서를 그린 그림들을 수많이 창작하였는데 향토화가, 참새화가로 오늘도 사랑을 받고있다.
최화백은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여러 나라들에서도 미술활동을 하였는데 몰골법으로 주체미술을 세계에 자랑높이 펼치는데서도 공헌을 하였다.
<2월의 서리꽃>
특히 2004년 러시아에서 진행된 국제미술전람회에서 최화백이 그린 조선화 <2월의 서리꽃>은 최고상인 사상예술특별상을 수여받았으며 2007년에는 중국 할빈시에서 열린 조선특색명인 미술전람회에서 조선화 <성공>을 출품하여 1등상을 받았다. 이와 함께 그의 작품들은 세계 여러 나라 미술전시회들에서 동양화를 대표하는 그림으로 평가되었다.
최화백은 지금 80이 가까운 나이이지만 손에서 붓을 놓지 않고있다.
그는 “이제 남은 여생에 내가 해야 할일이 무엇이겠는가. 우리 나라의 전통화법인 몰골화법을 대를 이어 후대들에게 물려주는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나는 지금도 나라의 미술가후비육성에 모든 심혈을 바치고있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