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계자는 어떻게 승계 되었나?

4)조선로동당 제5차대회 – 사상·기술·문화의 3대혁명과 주체사상


▲1968년 1월 23일 미군 간첩선 푸에블로호에 탑승한 미 해군들이 북(조선)에 채포되었다.

1968년 미국의 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가 북한(조선)에 나포된 데 이어 1969년 ‘EC-121’ 미국 간첩비행기가 격추되는 등 미국의 침략 행위가 끊이지 않는 속에 1970년대를 맞이했다.

당시 경제 침체에 빠진 미국은 베트남전쟁을 비롯한 침략 전쟁에서 그 출로를 찾았고, 제국주의 사상 문화적 침투에도 열을 올렸다.

반면 소련의 수정주의와 중국의 교조주의 논쟁이 중소분쟁으로 비화하면서 사회주의권은 친중파, 친소파로 나뉘어 분열이 극에 달했다.

이때 조선로동당은 ‘주체조선’의 사회주의 완전 승리를 위한 사상·기술·문화의 3대혁명 붉은기를 높이 올렸다.

제4차대회 결정을 관철해 혁명과 건설의 모든 전선에서 빛나는 승리를 이룩했다고 판단한 조선로동당은 9년 만에 다시 당대회를 열고 ‘사회주의 공업화의 위대한 승리’를 선포했다.

사상·기술·문화의 3대혁명

1970년 11월 2일에서 13일까지 진행된 제5차대회에는 결의권을 가진 대표 1,734명과 발언권을 가진 대표 137명이 참가했다. 당시 당원 수는 약 220만 명으로 추정된다.

대회에서 ▲기술혁명을 통한 노동의 차별 철폐와 힘든 노동에서 해방 등 사회주의 경제건설 6개년 계획을 발표 ▲개인·자유주의 문화침투를 막고 민족주의적 형식에 사회주의적 내용을 담은 문화 발전 ▲당 지도이념을 맑스레닌주의에 주체사상을 추가 ▲국방에서 자위의 원칙을 철저히 관철하는 국방력 강화 ▲노동자와 농민, 도시와 농촌의 생활 수준 차이를 없애는 방침이 결정되었다.

헌법에서 주석 칭호


▲ 평양의 밥공장을 현지지도하는 김일성 주석 [1970. 12.]

1972년 최고인민회의에서 새 헌법이 제정되었다.

조선로동당의 노선이 반영된 새 헌법에는 ▲정치에서 자주, 경제에서 자립, 국방에서 자위의 원칙 ▲사회의 참다운 주인인 근로대중의 권리와 의무 ▲주석을 국가수반으로 하고 인민의 더 큰 이익을 위한 새 국가기관체계를 규정했다.

새 헌법은 자력으로 북한(조선)을 혁명기지로 더욱 튼튼히 다짐으로써 조국의 자주적 통일을 앞당긴다는 조선로동당의 북한(조선)식 혁명전략을 담고 있다.

3대혁명소조운동


▲개천군 외서협동농장을 현지지도하는 김일성 주석 [1973.11.]

1972년 조선로동당은 3대혁명소조운동을 발기해 사상·기술·문화의 3대혁명을 떠밀고 나갔다.

제5차대회에서 3대혁명을 제창했지만 당시 당 간부들의 사상의식 수준과 정치실무 수준이 빨리 발전하는 현실보다 뒤떨어지고, 그들 속에서는 보수주의, 경험주의, 기관본위주의, 관료주의가 적지 않게 나타났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는 정치실무적으로 준비된 핵심들과 청년인테리들로 3대혁명소조를 구성하고 소조 성원들이 대중 속에 깊이 들어가 그들의 혁명적 열의와 창조적 지혜를 적극 발동하는 운동을 전개했다.


▲김책제철소 확장공사 현장을 현지지도하는 김일성 주석 [1974.6.13.]

김일성 주석이 1975년 3대혁명소조원들에게 한 당부에서 이 운동의 활동 원칙을 엿볼 수 있다.

“동무들은 간부들의 낡은 사상을 반대해 타협 없이 투쟁하되 그들을 존경하고 받들어 주어야 합니다. 또한 당의 노선과 정책에 철저히 의거하여 행동하고 군중 속에 들어가 그들을 진심으로 도와주며 언제나 겸손하고 검박하게 생활하여야 합니다.”

당시 김정일 당중앙위원도 “열길 물속은 몰라도 한길 사람속은 알아야 한다”며 모든 당사업을 사람과의 사업으로 전환할 것을 강조했다.

이처럼 3대혁명소조운동은 청산리정신과 청산리방법, 대안의 사업체계를 이은 혁명적 군중노선의 철저히 구현이다.

경제건설 10대 전망목표


남흥청년화학련합기업소를 현지지도 하는 김일성 주석 [1979.2.20]

1974년 조선로동당은 전원회의에서 모든 힘을 총동원하여 제5차대회가 내놓은 6개년계획을 앞당겨 끝내고 계속 혁신하여 가까운 앞날에 1,200만톤의 강철고지, 100만톤의 유색금속고지, 1억톤의 석탄고지, 500억KW의 전력고지, 2,000만톤의 세멘트고지, 500만톤의 기계가공품고지, 500만톤의 수산물고지, 500만톤의 화학비료고지, 10만정보의 간석지개간고지, 1,000만톤의 알곡고지를 점령할 데 대한 사회주의 경제건설의 10대 전망목표를 제시했다.


▲모내기 기계를 시운전하는 김일성 주석 [1974.5.]

10대 전망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 자체로 트랙터를 생산해 농촌에 보급하고, 밥공장이 생겨 가사노동이 줄었으며, 농촌에 까지 수도가 보급되는 등 농촌과 인민생활이 크게 발전했다.

3대혁명붉은기쟁취운동

조선로동당은 10대 전망목표 달성을 위해 천리마작업반운동을 새로운 높은 단계로 심화발전시킨 3대혁명붉은기쟁취운동을 발기했다.

‘사상도 기술도 문화도 주체의 요구대로!’라는 구호 밑에 3대혁명붉은기쟁취운동이 속도전을 일으킴으로써 6개년계획 과제들이 앞당겨 완수되었다.

혁명위업승계


▲조선로동당 제4차 조직일군대회에서 연설하는 김정일 조직비서 [1974.8.2]

1974년 2월에 열린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5기 제8차전원회의에서 ‘수령의 후계자 추대’ 문제가 상정되었다.

김일, 오진우, 림춘추 등 항일투사들이 김정일 당중앙위원을 “우리 당 수위에 높이 모시자”고 제기했다. 이에 김일성 주석과 전원회의 참가자들이 후계자 추대를 지지 찬동함에 따라 김일성 주석에서 김정일 지도자로 혁명위업이 승계되었으며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로 불리었다.


▲노농적위대 대원들을 만나 담화하는 김일성 주석 [1973.12.]

이 밖에 1977년 ‘사회주의교육에 관한 테제’가 발표되어 ‘혁명화, 노동계급화, 공산주의화’라는 사회주의 교육학의 기본원리를 밝혔으며, 과학기술과 문화예술도 급속히 발전했다.

조선로동당은 1980년 들어 제6차대회를 앞두고 벌어진 충성의 ‘100일전투’를 통해 공업생산이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마치 최근 제8차대회를 앞두고 전개하는 ‘80일전투’와 흡사하다. (계속)

[기획연재] 조선로동당 대회

조선로동당의 당대회는 우리의 총선과 대선을 합친 것에 비교된다. 총선과 대선을 거치면서 국정을 평가하고 새로운 계획을 수립한다는 점도 그렇지만 전 국민적 참여와 의사가 집중된다는 것도 같다. 때문에 조선로동당 대회를 알아야 북한(조선)이 제대로 보인다. [편집자]

(1) 창당과 제2차대회 – 북조선공산당과 조선로동당
(2) 제3차대회 – 천리마운동과 청산리방법
(3) 제4차대회 – 대안의 사업체계와 경제·국방 병진 노선
(4) 제5차대회 – 사상·기술·문화 혁명과 주체사상
(5) 제6차대회 –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와 후계자 승계
(6) 당대회가 없던 36년 – 북미 핵공방과 선군정치
(7) 제7차대회 – 일심단결, 정면돌파, 자력갱생
(8) ‘80일 전투’와 제8차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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